"행복의 파랑새" -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
우리 모두는 벨기의 시인이며 극작가인 모리스 매텔링크(Maurice Maeterlinck, Aug, 29, 1986- May, 6, 1949)의 동화극, '파랑새'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동화가 전해주는 메세지는 '행복이란 산너머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가난한 나무꾼의 두 남매 틸틸과 미틸은(찌루찌루와 미찔은 일본식 발음임) 성탄 전야 꿈속에서 요정이 찾아와 병든 딸아이의 행복을 위해 파랑새를 찾아 줄 것을 부탁하면서 다이아몬드가 달린 마법의 모자를 줍니다. 틸틸과 미틸은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온갖 곳을 다 돌아 다닙니다. 기억의 나라, 밤의 궁전, 사치의 궁전, 미래의 궁전 등 그리고 여러 나라를 방문하지만 결국 파랑새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침에 눈을 떠보니, 자기 집 새장 안에 파랑새가 더 파랗게 보이는 것을 발견합니다. 밤새 찾아 헤맨 파랑새는 바로 다른 어디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바로 자기들과 늘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병이 낫게 된 여자 아이와 틸틸과 미틸은 새장에서 파랑새를 꺼내는 순간 파랑새가 날아가 버립니다. 행복이란 바로 신변에 있으며, 남을 행복하게 해 주는 데 있다는 사살입니다. 말하자면 새장에 갇힌 파랑새가 자유를 찾아 자연으로 돌아가 훨훨 하늘은 날아 다니는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들 중에 화려한 욕망의 감옥에 갇혀서 자유하지 못하고 범민 중에 탄식하며 살고 계신 분은 안계신지요. 이 이야기와 관련하여, 이석봉 목사의 칼럼을 소개하겠습니다. <행복의 파랑새는 어디 있는가>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에게는 정신적 에너지가 있다. 자존감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등감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자기를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자기를 위로하는 기능이 발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를 비난하는 기능이 발달한 사람이 있습니다. "난 안돼, 가방끈도 짧고, 배운 것도 없고, 좋은 집안도 아니고, 강촌에서 태어났고, 난 항상 그렇지 뭐....." 이런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을 붙들고, 힘들게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잘 될 꺼야", "난 할 수 있어" 하는 사람은 가능성을 붙들기 때문에 미래가 밝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비난하는 기능을 살릴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로하는 기능을 살려야 된다고 말합니다. 남이 나를 비난하는 밖에서 오는 비난은 내가 논리적으로 대응하고 반박할 수 있지만,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비난은 반박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거꾸러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합니다. 행복을 오해하지 마시기를! 사람들은 카알 붓세의 "산 너머 저쪽"이란 시와 같이 행복의 파랑새를 잡으려고 항상 내일에 초점을 맞추어 삽니다. 산 너머 저쪽 / 칼 붓세(Carl Busse, 1872-1918) 산 너머 언덕 너머 먼 하늘 밑 행복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아, 나도 친구 따라 찾아 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다네. 산 너머 언덕 너머 더욱 더 멀리 그래도 사람들은 행복이 있다고 말을 한다네. 이렇게 사람들은 산 너머에 행복이 있다고 말해서 그곳에 가보았더니 다시 저 먼 곳에 행복이 있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먼 곳으로 행복을 잡으려고 쫓아갔지만 행복의 파랑새는 또 날아가 버렸다는 탄식입니다. 이것은 대부분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에 가서 좋은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 꺼야 하면서 꿈을 키웁니다. 그러나 인생은 내 맘 같지 않습니다. 사글세로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때는 전세로 사는 사람이 부러웠습니다. 전세로 살면 행복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행복의 파랑새는 내 집 마련으로 날라가 버립니다. 20평 짜리 내집 아파트를 갖게 되니 행복의 파랑새는 35평짜리로 날아가 버립니다. 인간의 욕망은 채울 길이 없기 때문에 행복의 파랑새는 계속 날아가 버립니다. 또한 사람들은 오늘은 불행하지만 내일은 행복해지리라고 기대랍니다. 그러나 내일이 오늘로 밝았는데도 행복하지 못하게 살면서, 또 다른 내일을 바라보면서 삽니다. 항상 염려하기 때문이요, 항상 행복의 수치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31- 34) 소망이 내일을 향한 것이라면 감사는 오늘을 향한 것이요, 소망은 내일을 위해서 중요한 것이라면 감사는 오늘을 위하여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을 소망하며 오늘을 감사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행복의 파랑새는 내일에 있지 않고, 바로 오늘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바르게 하시는 분이 오직 주님이요, 성경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말씀을 따를 때, 오늘이 기쁘고, 오늘이 감사하고, 오늘이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 이석봉 목사 : 총회연합신학교 학장 - <오늘의 말씀과 찬송>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1,32) ***************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리라 오 할렐루야 주 예수 지난 죄는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495/3절) 샬롬, 1/12/14 주일아침 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