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 오헨리 -
아래는 어린 시절에 양친을 잃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어렵게 생활하던 미국의 작가, 오 헨리 (O. Henry 1862-1910)가 성탄절을 마지하여 여러분의 가정에 보내 드리는 '성탄 선물'입니다.- 백호 - 1 달러 87 센트, 이것이 그녀가 가진 전부였다. 그 중 60 센트는 잔돈으로 그녀가 물건 값을 악착같이 깎아 깍쟁이라는 핀잔을 받고 얼굴이 빨개지면서까지 식료품 가개나, 채소 가개나, 푸줏간 주인과 시비를 해서 그때마다 한 푼 두 푼 모은 것이었다. 델라는 이 돈을 세 차례나 세어 보았다. 역시 1 달러 87 센트였다. 그런데 내일은 크리스마스가 아닌가. 별수 없이 델라는 허술한 작은 침대에 뛰어들어가 넋두리라도 하는 길밖에 없었다. 델라는 침대로 뛰어들어 넋두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고 나면, '인생이란 눈물과 콧노래와 웃음으로 빚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고, 그 중에서 인생은 콧노래가 제일이라는 교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집 여주인은 푸념이 차츰 콧노래로 변해가는 동안 방안을 둘러보았다. 가구가 딸린 이 아파트의 집세는 한 주일에 8 달러였다. 이 집은 지나치게 형편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하면 거지 떼들이 몰려들기 딱 알맞은 그런 방이었다. 아래 현관에는 늘 비어 있는 우편함이 하나 있고, 누가 눌러도 소리 나지 않는 초인종 단추가 있었다. 그리고 우편함에는 '제임스 딜링햄 영'이라고 쓴 명판이 달려 있었다. '딜링햄'이라는 이름은 옛날 살림살이가 괜찮던 시절에는 산들 바람에 나부껴 광채까지 띠고 있었다. 그 당시 이 방 주인의 수입이 매주 30 달러였으나, 수입이 20 달러로 줄어든 오늘에 와서는 '딜링햄'이라는 이름은 아주 희미하게 보였다. 마치 글자 자체가 멋적다는 듯 바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 제임스 딜링헴이 직장에서 돌아와 이층으로 올라가면, 그의 부인 델라는 언제나 남편을 제임스를 '짐'이라 부르며 힘껏 껴안곤 했다. 참으로 기분 좋은 일이었다. 델라는 울음을 그치고 분첩으로 뺨을 두들겼다. 그리고 창가에 서서 뒤뜰의 잿빛 담 위를 걸어가는 고양이를 힘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인데, 짐의 선물을 살 수 있는 돈이라곤 1 달러 87 센트가 전부였다. 그나마 몇 달을 두고 한 푼 두 푼 모아 온 것이다. 주급 20 달러로는 어절 도리가 없었다. 사랑하는 짐의 선물을 살 돈이 겨우 1 달러 87 센트라니, 그녀는 남편을 위해 무엇을 선물하면 좋을까 궁리하면서 행복감에 잠겨 긴 시간을 보냈다. 무엇인가 좋고 진기하고 진짜 짐이 가지고 있으면 영광스러울 만큼 가치 있는 것을 사고 싶었다. 그런데 제임스 딜링햄 부부에게는 대단한 자랑거리가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짐이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금시계였고, 다른 하나는 델라의 금발 머리채였다. 만일 솔로몬의 애첩 시바의 여왕이 바람벽을 사이에 둔 옆집에 살고 있다면, 델라는 늘 창문 밖으로 머리채를 늘어뜨리고 여왕의 보석과 타고난 미모를 완전히 무색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만일 지하실에 보물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솔로몬 왕이 이 집의 관리인이었다면, 짐은 그가 옆을 지나갈 때마다 자기의 시계를 꺼내 보이며, 왕이 탐이 나서 자꾸 수염을 쓰다듬는 모습을 보면서 즐겼을지도 모른다. 그처럼 아름다운 델라의 머리채는 지금 그녀의 둘레에 멋지게 늘어져, 마치 황금폭포가 물결치듯 빛났고, 무릎 아래까지 흘러 내린 머리채는 그녀의 의상이라도 될 성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하고 재빠르게 머리채를 손질해 올리고, 잠시 머뭇거리며 조용히 서 있는데, 낡아빠진 붉은 융단 위로 눈물이 방울 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낡은 밤색 자켓을 주워 입고, 낡은 밤색 모자를 쓰고, 눈물 맺힌 눈으로 치마바람을 내며 층계를 내려가 거리로 나섰다. 그녀가 발을 멈춘 상점에는 이런 간판이 적혀 있었다. '마담 소프로니 상점. 각종 미용, 머리 용품상' 단숨에 상점으로 뛰어올라간 델라는 숨을 몰아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소프로니'라는 이름과는 달리 몸집이 크고, 살결이 유난히 희며, 쌀쌀하게 생긴 마담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델라가 입을 열었다. "제 머리칼을 사지 않으시겠어요?" "사지요." 마담이 말했다. "모자를 벗고, 어디 한번 보여 줘요." 순간 황금빛 폭포수가 스르르 흘러내렸다. "이십 달러." 마담은 익숙한 솜씨로 머리채를 잡아 올리면서 말했다. "빨리 계산해 주세요." 델라가 말했다. 그 후 두 시간, 델라는 아주 행복했다. 그녀는 짐의 선물을 사러 여러 상점을 드나든 끝에 드디어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냈다. 그것은 짐을 위한 선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다른 상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상점마다 샅샅이 뒤젔던 것이다. 그것은 백금으로 된 시계줄인데 장식이 단순하고 말쑥했다. 보면 볼수록 속되지 않고, 실용적이고, 상당한 가치를 지닌 듯이 보였다. 남편의 시계에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짐의 품위에도 어울리는 물건이었다. 그녀는 무려 21 달러나 지불하고 나머지 87 센트를 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이 시계줄을 시계에 채우면 그이가 어느 자리에서건 내놓고 시간을 보는데 부끄러울 것이 없을 것이다. 그는 낡은 가죽 끈을 시계줄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시계는 훌륭했으나 몰래 꺼내 보는 수가 많았다. 델라는 집에 돌아오자 황홀했던 기분에서 어느 정도 이성을 되찾았다. 그녀는 고대를 꺼내어 황폐한 머리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 그녀의 머리는 짤막하게 웨이브진 머리털로 뒤덮여 마치 장난꾸러기 초등 학교 학생처럼 보였다. 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한참 살펴보면서 "짐이 나를 못살게 굴지만 않는다면." 하고 중얼거렸다. "나를 보자마자 그이는 내가 코니 아일랜드 합창단의 소녀 같다고 할 거야. 그렇지만 난들 어떻게 한단 말인가. 1 달러 87 센트로 무엇을 살수 있었단 말인가?" 그녀는 7 시에 커피를 끓이고, 난롯불에 프라이팬을 달구어 폭챱을 만들 준비를 했다. 짐은 귀가 시간이 늦는 일이 없었다. 델라는 시계줄을 두 겹으로 접어 손에 들고 짐이 늘 들어오는 문가에 놓여있는 테이블 한쪽에 앉았다. 그러자 층계를 올라오는 발거름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극히 사소한 일에도 날마다 속으로 기도를 드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지금도 "하나님, 아무쪼록 저이에게 아직도 제가 예쁘게 보이도록 도와 주시옵소서!'하고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문이 열리며 짐이 들어섰다. 그는 얼굴이 수척하고 몹시 굳은 표정이었다 그는 스물두 살 한창 나이에 가엾게도 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기가 힘에 겨웠다. 그의 외투는 새로 사야 할 만큼 낡았고 장갑도 없었다. 문 안에 들어선 짐은 마치 메추리 냄새를 맡은 사냥개처럼 우뚝 멈춰 섰다. 그의 시선이 델라에게 가 멎었다. 그 시선에는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나타나 있었다. 그것이 그녀를 소스라치게 했다. 그것은 노여움도 아니고 놀라움도 아니고 불만도 우려움도 아니었다. 그건 그녀가 미리 짐작한 어던 감정도 아니었다. 그는 표현하기 어려운 독특한 표정으로 잠자코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델라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남편에게 다가갔다. "여보!" 하고, 그녀는 큰 소리로 불렀다. "왜 그런 눈으로 저를 보세요? 제 머리칼을 팔았어요. 저는 다만 당신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드리려구요. 머리칼은 곧 다시 자라날 테니까 괜찮아요, 그렇지요? 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 머리칼은 아주 빨리 자라는걸요. 여보, 어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해.'라고 말씀하세요. 그리고 유쾌한 기분을 가져요. 당신은 생각도 못할 멋진, 정말이지 예쁘고 근사한 선물을 마련했어요." "당신 머리칼을 잘랐다구?" 그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이 분명한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괴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네, 잘라서 팔았어요." 델라는 말했다. "그렇지만 저를 좋아하는 당신의 마음은 전과 다름이 없겠지요? 머리칼이 없어도 저는 그대로예요. 그렇지 않아요?" 짐은 뭔가를 더 알아 내려는 듯한 눈초리로 방을 둘러보았다. "그래 당신 머리칼이 없어졌단 말이요?"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햇다. "찾아볼 것도 없어요."하고 델라는 말했다. "팔았다고 했잖아요. 팔았다구요. 오늘은 크리스마스예요. 다정하게 대해 주세요. 머리칼은 당신을 위해서 팔았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머리칼은 하나하나 셀 수 있을는지 몰라도 당신에 대한 제 애정은 누구도 셀 수 없을 거예요."하고 그녀는 별안간 애정이 담뿍 깃든 말투로 말했다.
"짐! 폭챱을 만들까요?"
얼빠져 있던 짐은 문득 제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그는 델라를 껴안았다.
짐은 외투 주머니에서 어떤 포장지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던졌다.
"델라, 나를 오해하지 말아요!" 하고 말했다.
"당신이 머리칼을 짤라 버렸건, 면도를 했건 그것이 당신에 대한 애정을 식게 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저 포장지를 펴보면 왜 내가 아까 한참 멍하게 서 있었는지 알 수 있을거요."
그녀의 하얀 손가락이 끈과 포장지를 재빨리 풀어 헤쳤다. 그러자 기뻐 어절 줄 모르는 환성이 터져 나왔다. 뒤미처 가엾게도 갑자기 여자의 발작적인 울음이 터저 방안은 눈물 바다가 되었다. 그래서 이 방 주인은 있는 힘을 다해서 아내를 위로하여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짐이 사온 머리빗이 놓여 있었다. 양쪽에 이가 달린 이 빗은 오래 전부터 델라가 브로드웨이의 진열장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갖고 싶어 했던 것이다. 예쁜 진짜 거북껍질로 만들고 가장자리에 보석이 박힌 진귀한 빗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칼에 꽂으면 잘 어울릴 그런 빛깔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매우 값진 머리빗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감히 가져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다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바로 그 머리빗이 이제 자기소유가 되었으나, 정작 그토록 탐내던 장식물을 빛나게 해주어야 할 머리채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머리빗을 가슴에 꼭 품었다. 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쳐들고 영롱한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짐, 제 머리칼은 무척 빨리 자라요?" 그녀는 마치 털을 세운 고양이 새끼처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한편 짐은 아직도 자기의 선물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선물을 손바닥에 반듯하게 올려놓고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 새하얀 귀금속은 그녀의 맑고 뜨거운 정신을 받아 더욱 빛나는 것 같았다.
"어때요, 짐! 멋지죠? 글쎄 이걸 구하느라고 거리를 온통 쏘다녔지 뭐예요. 앞으로 이런 물건을 다시 구하려면 시간이 백갑절은 걸려야 할 거예요. 당신 시계 이리 주세요. 시계줄에 채우면 얼마나 멋진가 한 번 보게요."
짐은 시계를 건네는 대신, 긴 의자에 양팔을 베개삼아 드러누워 빙긋 웄었다. "델라! 크리스마스 선물은 서로 잠시 보류하기로 하지. 선물로 쓰기에는 지나치게 좋은 걸. 나는 당신 머리빗을 사는데 돈이 필요해서 시계를 팔아 버렸어. 자. 그러면 폭챱이나 만들어요." 메리 크리스마스! 2013/12/24 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