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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하라" -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
추수 감사절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참으로 힘든 일 중의 하나 입니다. 농사가 잘 되어서, 사업이 잘 되어서, 무탈하게 1년을 보내어서.. 이런 경우에도 감사를 잊고 사는 사람도 많은데,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최악의 경우에도 감사를 잊지 말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지금 최종 말기 암 선고를 받았다면, 가슴이 주저 앉는 놀라운 심정인데 이런 경우에 어떻게 감사하라는 말입니까?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빌4:13). 지금 이 글에 접하는 우리는 별로 힘든 일 없이 감사절을 맞고 있겠지만, 우리 주변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환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들에게도 능력 주셔서, 그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그 어려움 속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우리는 감사와 더불어 그들을 위한 기도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7,18), 흔히 이 세 가지 덕목을 '기독인의 세 가지 실천 사항'이라고도 하며, 혹은 '기독인의 표식'이라고도 합니다. '기독인의 표식, 즉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남이 볼때에 이러한 이러한 모습으로 보여저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학창 시절에 나는 어느 학교 학생이라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자기 학교 빳지를 가슴에 달고 다녔습니다. 마치 국회의원들이 자랑삼아 금빳지를 달고 다니듯이.. 마찬가지로 기독인의 빳지는,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 그런데 어디 말같이, 범사에 감사하기란 그리 쉬운 일입니까? 그래도 기독인은 최악의 경우에도 감사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오늘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오래 된 저의 설교집을 뒤저 보니, 추수감사절에 "고난의 감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는데. 제 자신도 기억에서 살아진 아름다운 예화를 발견했습니다. 1942영 11월 8일, 미국 보스턴에 있는 코코넛 그루브(Cocornut Glove) 나잇트 클럽에 큰 불이 나서 493면이 사망했고, 200 여명이 화상을 입고, 구사일생으로 구출되었는데, 그때에 매사추세츠 병원에 근무하던 린드멘이라는 의사가 연구 논문을 쓰기 위해서 그 화제에서 구출된 100 여명의 사람들에게 전화도 걸고, 직접 찾아가서 조사를 한 결과 85%의 사람들이 그 때에 당한 일이 인생을 새출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부부간이 화목하게 되었고, 과거의 나쁜 습관을 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의사가 이 연구 논문에서 사용한 새로운 용어가 있습니다. "위기 개입, Crisis Intervention"라는 용어입니다. 이 용어가 후에 심리학의 용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위기는 발전의 기회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학설이 나온 후부터 '생명의 전화나 핫라인 Hot Line' 같은 위기구조 활동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범사에 감사'란 어떤 위기 가운데서도 그가 당한 현실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고, 또 감사란 평범한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위기와 역경과 절망의 골짜기를 통과한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스스로가 어려운 인생을 살아간다고 느끼시면, 이때가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나아가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영적인 유익을 나에게 주시려고 하시는지 발견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에서 선교한 미국 감리교 선교사 불(E. R. Bull)이라는 목사님은 일본 기독교의 순교사화를 연구하던 중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637년 '류큐 제도(琉球 諸島)와 아마쿠사 제도 (天草諸島)에서 일본 기독교인 1,111 명이 순교를 했는데. 일본 당국은 기독교 부활신앙을 부인하고 모욕하기 위해서 순교자들의 머리와 몸통을 절단해서 따로 따로 큰 구덩이에 무덥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순교자들이 참수대로 나갈 때 조금도 두려워 하는 기색이 없었고, 찬송을 부르며 단두대에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과 같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만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 나라에도 있습니다. 1867년 10월 22일, 대원군이 천주교를 박해하여 지금 서울 용산구 이촌동 199의 1번지에 소재한 절두산에서 이의송(프란치스코)과 김이쁜 부부와 아들 이붕익, 10월 25일에는 황해도 출신의 회장 박영래(요한) 등이 효수형((梟首刑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닮)을 받았고, 그 밖의 많은 순교자들은 참수형(斬首刑 목을 베어 죽임) 장살형(杖殺刑 몽둥이로 쳐죽임), 백지사(白紙死 얼굴에 한지를 붙이고 물을 뿌려 숨이 막혀 죽게 함) 등으로 가혹한 형벌로 신자들을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승에 따르면, 어떤 순교자는 죽은 뒤에도 얼굴 색이 변하지 않았고, 어느 순교자는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으며,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안장한 사람은 그들의 뒤를 따라 순교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목격한 한 외국인 한 관리는 크게 감동이 되어 이 무서운 박해와 위협 속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복음을 받아들여 그도 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오늘의 한국교회는, 어두운 그늘도 많이 있지만, 이와 같이 순교자의 흘린 피가 복음의 씨앗이 되어 오늘의 교회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20세기의 성자라고 불리우는 테레사 수녀가 인도 캘커타에 고아원을 세우겠다는 발표를 하자 많은 신문 기자들이 찾아와서 테레사와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수녀님, 건축 자금은 얼마나 준비되었습니까?" 테레사 수녀는 주머니에서 동전 세닢(3실링)을 꺼내 보이면서, "내가 가진 것은 이것뿐입니다" 기자들은 그 말이 농담인줄 알고 웃었다고 합니다. 이 때에 테레사는 힘 있게 말했습니다. "이 3 실링이 테레사하고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3 실링이 하나님과 합쳐지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자기를 믿고 감사하는 자녀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시편 42편 1-5을 읽어보면, 바벨론 포로의 신세가 된 한 시인은 역경 속에서 감사라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새로 번역에는,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한송하리로다." 이 시인은 과거에 화려한 생활을 하다가 지금 역경에 처하였지만,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새 힘을 얻고 있습니다. 욥도 지난 날의 화려한 생활이 변하여 최악의 환난을 겪고 있지만, 그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됬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 바울도 빌립보 옥중에서 찬송하고 감사했더니, 쇠사슬이 풀리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행16:25-26). 그후 그는 로마 옥중에서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자신이 지난 날 빌립보 옥중에서 당한 일을 회고하면서 쓴 것이라고 봅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4-7). 한국의 어느 실직한 가장이 고민 끝에 일가족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온 시구들을 승용차에 태우고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다 살아있었습니다. 이때에 이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섰더라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에 무지몽매한 이 사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가족을 몽둥이로 패서 죽이고, 자신도 고속뻐스에 뛰어들어 투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슬픈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자의 말로라고 뵈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당하는 환란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롬8:18), 어떤 역경속에서도 감사를 잊지 않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2013/11/24 추수감사절 주일 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