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면 복이 온다 (2) - 목회 성공의 비결 -
사람이 불행하게 되는 것은 복되게 사는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 있는 그 길을 따르지 않는 데 있다고 봅니다. 교회를 2, 30년 다녔으면 그 주일 주보의 설교 제목만 봐도 ‘아, 오늘은 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겠구나’할 정도로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신학교를 갓 나와 목회 경험이 부족한 젊은 목사 보다는 교인들이 더 많이 알고있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외치는 자나 듣는 자가 다 그것을 실천 못하는 데에 불행의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괴테의 말 중에 '행복은 어떤 심오한 진리 속에 있는게 아니라, 일상생활의 평범한 이야기 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즐거운 생활을 하고 싶으면 공연히 지나간 일을 들처내어 염려하지 말고, 좀처럼 성내지 말라. 앞으로 즐거운 일이 오리라 생각하지 말고, 언제나 오늘 즐거워하라.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미래의 일은 하나님께 맡기라.” "좀처럼 성내지 말라." 저도 늘 이 말씀에 도전을 받습니다. 대개 목회에 실패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성질 나는 대로 말을 막 합니다. 좀 참았으면 좋을 것을 절제를 못합니다. 절대로 교인에게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제직회나 당회에서도 힘 겨루기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천사 같은 설교를 해도 목회에는 실패합니다. 목회에 선공한 선배님들을 보면, 성경과 교리에 위배되지 않는 한, 교인들에게 그저 저주고, 양보하고, 기도 중에 다음 기회를 기다립니다. 그리면 반듯이 때가 오는 것입니다. 전에 한경직 목사님이 그렇게 목회를 하셨답니다. 당회 중에 의견의 총돌이 생기면, 기도하고 다음 기회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가정의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자! 용서하자! 이것입니다. 옛날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임금 장황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왕은 어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그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서 신하들을 모아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한참 흥취가 고조되는 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져 연회장이 깜깜한데 그 틈에 어느 신하가 임금 곁에서 시중드는 후궁에게 입을 마추었습니다. 그녀는 불시에 당하는 일이라 엉겹결에 그 신하의 갓끈을 잡아 떼고 왕에게 고했습니다. " 대왕이시어, 어느 무례한 놈이 불이 꺼진 틈을 타 소첩에게 해괴망측한 짓을 했나이다. 소첩이 그 놈의 갓끈을 떼어 표시를 했사오니 어서 불을 켜고 그 놈을 잡아 엄벌하여 주옵소서.". 장황은 애첩의 말을 듣는 순간 생각하기를 "내가 불을 켜게 되면 그 짓을 한 신하를 당장 잡을 수는 있겠으나 주홍 속에 장난삼아 한 짓으로 아까운 신하의 목을 베야 할 것을 감안할 때 내가 잠시 참으면 당장의 일은 해결될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장황은 큰 소리로 신하들에게 명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모두 갓끈을 뗄지어다." 왕의 명령에 모두를 갓끈을 떼고 나니 불은 켰으나 누가 입을 맞춘 사람인지 가려낼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이 있는지 몇 년 뒤에, 초나라와 진나라 사이에 전쟁이 있었습니다. 원낙 강한 진나라인지라, 초나라가 위기에 몰리면서 장황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 갑자기 한 장수가 나타나 왕을 구해냈고, 진나라 장수를 차례로 베고, 군사들을 물리치고 초나라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죽음을 마다하고 장황을 구한 부하에게 장황이 물었습니다. "그대는 대체 누구인가?"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수년 전 연회석상에서 있었던 갓끈 뗀 사건을 기억하고 계시옵니까? 이놈이 바로 그 죄인입니다. 그때에 폐하의 은덕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저는 그 길로 산에 들어가 대왕을 위하여 보답할 길을 생각하고 무술을 익혀 오던 중 대왕의 생명이 위태롭다는 소식을 듣고 하산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난 장황은 그의 공을 높이 치하했고, 장황은 부하를 관대하게 대한 덕택에 위기의 순간에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 16장 32절) 샬롬! 2013/9/22 주일아침 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