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혜사(保惠師) 성령 - 성령강림주일 -
교회력에 따라 오늘은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예수님 부활하신 후 40일간 지상에 계시면서 부활을 친히 증거하시고(행1:1-5), 승천하신 후 여를 만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면서 약속하신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던 무리들 가운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함께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현상으로 각 사람 위에 성령이 임하여 낙심하고 근심하던 제자들에게 큰 능력과 복음 전파의 용기를 얻게 하신(행2:1-4) 날을 기념하는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들이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은 성대하게 지키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성령강림주일은 가볍게 넘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약속대로 성령의 강림이 없었더라면 지상에 기독교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성령강림절의 기쁨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겠습니까? 먼길을 떠난 어머니가 자식들이 간절이 기다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아이들의 기쁨이 어떠 했을가를 상상해 보면 오순절 성령강림의 기쁨이 제자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컸을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은 그 때의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16-20)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다시 오리라"는 말씀입니다. 고아란 어릴 때 부모를 잃은 불상한 어린 아이를 말하지요. 예수님 승천하시면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다시 너희에게로 오리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성령강림의 구체적인 약속입니다.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 1965년이니까, 근 50년전 일입니다. 625 전쟁이 막 끝나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어렵게 살던 때 입니다. 서울 관악구 노량진동 신성교회에 30대 초반의 김 권찰이 전차 기사로 일하던 남편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슬하에 딸 셋이 있고, 막내로 3 살짜리 아들이 있었는데 남편이 남김 유산도 없고, 판자집 단칸 방에서 생활을 했는데,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했습니다. 무엇이라도 해야 먹고 사는데, 3 살짜리 아들이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마치 교회 장로님이 영아원을 경영했는데, 의론을 해서 이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맡아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환경이 제일 좋은 방과 심성이 좋은 보모를 배정해 주었습니다. 좋은 놀이터에, 좋은 장난감에, 그리고 자기 집에서 먹어보지 못한 좋은 음식으로 아이에게 최선을 다 해줬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끔 들려서 살펴보니 기대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아이가 나날이 시들어가는 것입니다. 음식도 잘 먹지 않고, 처음에는 엄마를 찾으면서 밤이나 낮이나 울기만 하더니, 이제는 울음도 그치고 눈물도 그치고, 별의 별 수단을 다 써도 아이가 웃는 법이 없다고 보모가 걱정을 합니다. 아이 엄마도 하루의 일이 끝나면 빠짐 없이 영아원에 들려서 창 너머로 몰래 아이를 드려다 보고, 시무룩하고 처져있는 아이를 보고 슬피 울며 발거름을 옮겼습니다. 이 형편을 본 김 권찰도 저도 걱정이 생겼습니다. 아이를 저대로 두었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다시 찾아오기로 결정을 보았습니다. 김 권찰도 진작 이이를 찾아오고 싶었으나 원장 장로님이 특별히 생각해서 허락해 주었는데, 이제 다시 찾아간다고 말하기가 힘들었다고 하면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석달 만에 엄마를 보는 아이는 한참 동안 정신 없이 엄마를 쳐다보더니 그것이 분명 엄마라는 것을 알고는 앙~~~하며 울음을 터트리면서 엄마 가슴에 뛰어들었습니다. 둘은 한참 흐느끼며 부둥켜 안고 울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저는 권찰님의 집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집이라야 달동내의 단칸방 판자집입니다. 그때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있는데, 꽁보리밥에 반찬이고는 김치 한 가지었습니다. 그런데도 벌써 아이의 얼굴에는 포동포동 새살이 오르고, 웃음 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도 살지만, 사람은 사랑을 먹어야 사는구나!". 이 지구촌에는 절대빈곤으로 굶어 죽는 사람도 많지만, 모든 것이 넉넉해도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사람의 결핍 때문이 아닐까요? 렘브란트의 유명한 그림, '돌아온 탕자'를 주의하여 보면, 돌아온 아들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아버지의 두 손이 서로 다르게 보입니다. 왼 손은 엄격하고 힘센 아버지의 손으로, 오른 손은 부드럽고 인자한 어머니의 손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의 손이 아버지의 엄격한 손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방탕한 아들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가슴속에 깃들어 있는 사랑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무슨 일을 하시는가? 엉어에는 보혜사 성령을 '위로자 Comforter', '대언자, 상담자, Counseler', 혹은 '도움이 Helper'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낙심하고 소망이 없을 때, 위로하고 변호해 주시고, 재기의 힘을 주시는 분이 보혜사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지요. 요한은 예수님을 대언자(보혜사)라 했습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보혜사)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2:1)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님을 우리의 도움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 (롬8:26)고 했습니다. 또한 성령은 "진리의 영"(요14:17)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닫고(요14:26), 세상이 주지 못하는 참 평안을 누릴 수 있게 하십니다(요14:27).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의 어머니와 같습니다.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한결같지요. 잘난 자식은 지 멋대로 살지만, 못난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50년 전이나 50년후에도 변함이 없는 것을 생활속에서 친히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우리 모두 어머니의 사랑과 같이 늘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오늘의 말씀> 평안을 너희에게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걱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드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28). 샬롬! 2013/5/19 성령강림주일 아침 백호

* Marian Anderson, Ave Maria [Schubert; Kosti Vehanen,piano;New York, Feburary 4,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