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활의 증인 - 도마의 행적 -
오랜 만에 옛친구를 만났는데, 그 때 나는 인생의 무상을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소식으로는 그가 중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을 했었고, 그 부인도 백혈병으로 고생을 많이 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직접 만나보니, 의외로 많이 늙었고, 여위어있었습니다. 그러매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오래만이요. 참 반갑습니다. 여전하시네요!”라고 했습니다. 속으로는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됬지?' 하면서도,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한국 사람들의 덕담이요, 예의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랬더니 그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고럼 나야 뭐 항상 젊지!” 합니다. 그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요, 곧 죽어도 죽는 소리는 안하는 성격이라, 아마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도 날 보고, "아니, 당신도 고대로구만!” 합니다. 속으로 나는 '뭐가 고대로야! 형편 없이 늙었는데'하면서도, "고럼, 난 아침마다 산책을 하거든!”했습니다. 사실 말은 그랬지만, 내가 내 모습을 봐도 2 년전, 3 년 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데, 거저 사람들은 늙어가는게 다 아쉬우니까 저런 헛소리를 하지 하면서 속으로 웃어버렸습니다. 나는 친구와 헤어진 후 집에 돌아와서 다시 한번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이 늙지도 말고, 죽지도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한가지 불변의 법칙을 적용하고 계시는데, 화초나 식물이나, 짐승이나 사람이 다 같이 병들거나 늙으면 죽지... 천하장사나, 절세미인이나, 천하의 억만장자라도 다 늙어가는 것은 일반이고, 언젠가는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동물애호가는 비록 미물의 동물일지라도 자기가 키우든 강아지가 죽으면 그렇게 슬퍼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어떻겠습니까? 언젠가는 사별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이런 슬픈 과정에서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의 신앙은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그러나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아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이 부활의 신앙을 거부하거나 의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은 오늘날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막16:11;눅24:11)과 초대교회 성도들 까지도(마28:17;고전15:1-8)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예수님의 12 제자 중의 한 사람인 도마라는 제자였습니다. 도마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신 그날 저녁,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어느 집에 모여 문들을 닫았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십자가에서 상하신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을 때,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도마는 예수님 오셨을 때에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음으로 그가 밖에서 돌아온 후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고 말을 하니까 도마가 믿지를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그런 일이 있은 후 8 일만에 제자들이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다시 오사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에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도마를 향하여 하신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고.  
 
이 말씀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네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 하신  
말씀입니다.   

첫 번째는 부활하신 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태내시고(마28:1;막16:1,9;
눅24:10;요20:1), 

두 번째는 그날 저녁에 엠마오로 가는 다른 두 제자에게 나타내시고(막16:12; 
눅24:13), 

세 번째는 그날 밤 두 제자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예수님 만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나타내시고(눅24:36;요20:19), 

오늘은 그로부터 여드레만에 네 번째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요20:26). 

< 왜 네 번째 다시 나타나셨을까요?>  
 
그것은 제자 중 한사람이라도 부활의 주님을 의심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24절에 보면  '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세 번째)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했고, 
33절과 35절 사이를 보면, 글로바와 시몬이 엠마오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야기를 제자들에게 하는 도중에, 도마는 '그 무슨 허탄한 소리를 하느냐?'는 
식으로 잠깐 밖으로 나갔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도마가 밖으로 나간 사이에 
예수께서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눅 24:36).  

얼마 후에 도마가 밖에서 돌아왔을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그에게 말하니까, 그는 자기를 놀리는 줄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20:25하반)고.
  
이런 문맥으로 볼 때에 예수께서 4 번째 나타나신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는 의심하는 도마에게 부활의 학신을 주시기 위하여  
나타나신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것은 다음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20:26-27). 

이렇게 주님은 제자 중 한 사람이라도 부활의 신앙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의심하는 도마의 말을 다 듣고 계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의심을 해결하여 주시기 위해서 다시 도마에게 나타나신 것
아니겠습니까?   

드디어 도마는 부활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다.”(요24:28)라고.

이것은 예수의 부활을 확신한 도마의 신앙고백이요, 
어쩌면 베드로의 신앙고백(마16:16) 보다 더 훌륭한 부활의 신앙고백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자의적인 고백이 아니라, 성령에 의한 고백이요,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예수에 대한 부활 신앙 이전의 고백이었다면, 
도마의 신앙고백은 예수님 부활 이후의 부활 신앙의 고백이라는 것이 특징이라
할수 있습니다.   

 <도마의 철저한 신앙> 

(1) 신앙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봅니다.  
베드로와 같이 급하게 믿었다가 나중에 잘못을 저지르는 형태요,   
도마와 같이 의심하다가 그  의심이 해결되면 확고하게 그 신앙을 견지하는 
형태라고 봅니다.  

도마는  믿지 못하는 것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았고,  
알고 있지 않을 때에 아는 척하지 않았습니다 .
무엇을 믿어야 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에 그는 그것을 분명하게 고백한 
사람이었습니다. 

(2)  그는 고백과 함께 실천에 옮긴 사람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인도에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그는 거기서 순교하였고,  지금 인도의 남동부 도시인 첸나이(마드라스)에는 
도마의 선교를 기념하는 유적지들이 있는데, 도마의 무덤이 있는 성도마교회가 있고,
도마가 기도했던 동굴과 도마가 잡혔던 언덕이 있고, 그가 기록한 도마행전
(외경)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도마의 성실한 회의가 확고한 신앙을 가져다 준 증거라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벤허의 작가 웰레스는 성경의 허구를 반박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다가  성경에서 예수를 만나 불굴의 작품을 역사에 남겼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의심이 되는 분은 알 때 까지 배우고 캐고 드십시오, 
회답이 없는 의심은 최대의 비극이랍니다.

<예수님이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이후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라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2000년 전의 부활 사건을 친히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친히 본 그 증거를 2000년의 교회의 역사가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 증거를 전해야 할 의무와 사명이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와 신도들의 사명과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무엇이라 대답할 것입니까?

교회끼리 경쟁이라도 해서 교회를 부흥시키는 일입니까?
다른 교회보다 예배당을 화려하게 건축하는 일입니까?

오늘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이런 일에 열을 올리다가
지금은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을 받고, 순교를 하면서도.
예수님의 최후의 분부에 충실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주님이 최후의 분부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제자들과 교회가 순교로 전해준 이 부활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메시야의 왕국건설에
우리는 적극 동참해야 합니다.


샬롬!
2013/4/7
주일아침
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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