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어진 고통의 멍에 - 고난주간의 명상 -
이주간은 사순절 마지막 주간이요. 고난주간입니다. 이 주간을 어떻게 보내시려고 하십니까? 마더 테레사의 이런 글이 있습니다. ♥ 고통은 예수님의 입맞춤 ♥ 우리의 삶 속에서 고통은 결코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고통은 당신이 사용만 잘 하면, 특히 당신이 그 고통을 세상의 평화를 위해 봉헌했을 때는 그것은 크나큰 사랑의 수 단이 됩니다. 고통 그 자체는 아무 소용이 없지만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나누어진 고통은 굉장한 선물이 되며 그것은 사랑의 표징이 됩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사랑의 가장 큰 선물인 은총으로 알려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통을 통해 우리의 죄가 사해졌기 때문입니다. 고통, 아픔, 슬픔, 모멸, 외로움 등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입맞춤에 불과 합니다. 그분이 당신에게 입 맞출 수 있도록 당신이 그렇게 가까이 다가갔다는 표시입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은 항상 부활의 기쁨으로 끝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당신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고통을 느꼈을 때는 이제 다가올 부활을 기억하십시오. 어떤 것도 당신을 슬픔으로 채우게 해서는 안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기쁨을 잊어버릴 만큼 큰 슬픔이 당신의 마음을 결코 채우지 않게 하십시오. - 마더 테레사, "작은 몸짓으로 이 사랑을" - 다음 주일은 교회 절기에서 제일 가는 부활 주일입니다. 그러나 고난주간이 없는 부활주일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주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그것이 참 중요합니다. . 교회가 교회답고, 교인이 교인다운 것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나에게 주어진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관건일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뜻하지 않은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할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 (벧전 4:12-19). 주안에서 고난을 당할 때 사람의 수단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지말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에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또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분열하여 싸울 때. 이런 권면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하라"(빌2:1-4)고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인권의 문제입니다. 교회내의 모든 문제는 여기서 부터 시잘되는 것 같습니다. 뭐 가정의 부부사이의 문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빌립보 3장 10절 이하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이 말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는 말입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자기가 죽지 못해서 일어나는 문제가 태반입니다. 또한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낸 옥중 서신에서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고 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가 고난에 동참하는 길은 교회를 위하여 친히 내 몸으로 수고와 고통을 감당한다는 말입니다. 신문지상에서, 혹은 인터넷을 통해서 보면, 지상의 교회들이 문제가 참 많습니다. 물론 그것은 오늘의 교회뿐만 아니라, 초대교회도 있었지만, 요즘은 그 도가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상의 교회는 지금까지 2000년동안 부족한 인간들을 통해서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비록 지상의 교회는 불완전하고 부족하지만 교회를 사랑하는 주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 고난주간에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동참하는 우리가 되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 나에게 주어진 고통의 멍에는 무엇입니까? > "고통은 당신이 사용만 잘 하면, 특히 당신이 그 고통을 세상의 평화를 위해 봉헌했을 때는 그것은 크나큰 사랑의 수단이 됩니다." 이 말씀을 자 기억하십시다. 이제 우리 모두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께 나아가 죄악된 고통의 멍에를 내려 놓으십시다. <오늘의 말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샬롬! 2013/3/24 종려주일 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