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신앙인과 형제우애 - 사순절의 명상(2)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 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2-4) 야고보서의 저자인 예수의 동생 야고보는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감독직에 있으면서 신앙의 박해로 인하여 각지에 흩어진 초대교회 신도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편지에서 수신자들을 '내 형제들’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초대교회 형제우애 사상이 어디서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요한복음 20장 17절에 보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 아침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너무 반가워서 아마 예수님을 부둥켜안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했습니다.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하라.” 여기에 보면, (1)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 했습니다. (2) 내 아버지는 곧 너희 아버지라 했습니다. (3) 내 하나님은 곧 너희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마태복음 28장10절에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내 형제들'이라 했습니다. 사회의 계층과 신분의 격차가 심한 그 시대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천한 어부 출신인 제자들을 가리켜서 '내 형제'라고 부른 것은 그것이 바로 예수 복음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 한 형제라는 사실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이전에 누구든지 다 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요, 형제라는 사실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이 있어서 야곱의 후손들을 형제라고 불렀지만 (출 2:11; 신 15:2) 초대교회는 그 이스라엘의 선민사상이 깨어지고, 이방인도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한 형제라는 만민평등 사상이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성숙한 크리스천은 그가 목사가 되고, 장로,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가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며, 교인 간에 얼마나 형제우애 사상이 성숙되어 가고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엡 4:11-16절 참조). 사도행전 13장 1절 이하를 보면, 해외선교의 모교회라고 할 수 있는 안디옥 교회의 아름다운 형제우애 사상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바나바와 사울(바울) 외에 신분이 천한 사람과 신분이 아주 높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서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해외선교에 힘쓴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1)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입니다. '니게르’라는 말이 ‘검다’는 뜻이라고 생각할 때 시므온은 아프리카 출신으로 볼 수 있습니다(Alford, Longenecker, 아사노 중이찌). (2) 구레네 사람 루기오 입니다. 구레네는 아프리카 북부의 해안 도시인데, 그렇다면 구레네 사람 루기오도 흑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니게르라 하는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 시몬(눅 23:26)과 같은 사람으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아마 구레네 시몬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난후 예수가 부활한 이후 그도 예수님을 구주로 제자들과 함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억지로 진 십자가라도 결코 주님은 외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3)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이 있습니다. 왕족의 신분이지만 저들은 주님의 일에 함께 어울렸습니다. (4) 끝으로 사울(바울)이 있습니다. 그 때에 바나바는 제일 선두에 섰고, 사울(바울)은 제일 끝자리에 그 이름이 나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선교의 첫 거름을 내어 디딘 안디옥 교회는 이렇게 사회적 지위와 피부의 색깔과 신분을 초월해서 오직 온 교회가 주님을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님의 인도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안수하여 해외 선교사롤 파송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보다 먼저 초대교회 성도들과 같이 형제우애 사상이 우선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이 형제우애 사상이 없으면, 목회도, 선교도, 복음전파도 제 길을 상실하고 말 것입니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이 큰 교회에 모여서 떠들어 대면서도 주님의 형제우애 사상이 없다면, 그것은 결코 주님의 교회는 아닐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형제우애 사상을 실감하고, 실천하는 교회가 세계선교와 복음을 바로 전달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순절에 흑인 니게르가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안디옥교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 12장 9절). 샬롬! 2013년 3월 3일 주일 아침 백호 백호의 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