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인권 -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약1:9,10) -
지상에 문제가 없는 교회는 하나도 없는 듯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야고보서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구체적으로 먼저 거론된 문제는 인권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교회를 향하여,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약1:9)고 권면하였고, 다시 2장 1절이하에서는 구체적으로 인권 문제를 다르고 있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주님이신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들을 차별해서 대우하지 마십시오. 가령 여러분의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 왔다고 합시다. 그 때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며 "여기 윗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거기 서 있든지 밑바닥에 앉든지 하시오' 하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불순한 생각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여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내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을 부요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해 주신 그 나라를 차지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압박하는 자들은 바로 부자가 아닙니까? 또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도 바로 그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성경 말씀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는 최고의 법을 지킨다면 잘 하는 일이지만 차별을 두고 사람을 대우한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고 여러분은 계명을 어기는 사람으로 판정됩니다.(공번 약2:1-9). 특히 이 말씀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초대교회에도 이런 경향이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면, 오늘의 교회들은 어떠하겠습니까? <교회와 인권> 1.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라 낮은 형제’란 '부한 형제’와 대구(對句)가 되는 것을 보면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은 가진 것이 없으면 자연히 소외감을 가지게 마련입니다.이것은 교인들 간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목사님들 간에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노회나 총회에 가보면, 큰 교회 목사님들은 말도 많이 하시고, 위세가 등등한데 비하여 농촌교회나 개척교회를 섬기는 목사님들은 기가 죽어 있고, 위축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질 때문에 인권의 침해를 받게 된다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물질은 축복이 아니고 저주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 물질 때문에 죄를 짓게 되니까요. (1) 낮은 형제는 무엇으로 자기의 높음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일본의 유명한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님이 한번은 나이야가라 폭포를 구경하는데, 그 곁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당신, 이 폭포의 주인이 누군지 아느냐?” 이 사람이 폭포의 주인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 당신은 아느냐?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님은, “이 폭포의 주인은 나다.” 이 사람은 너무 황당해서 다시 물었습니다. “어째서 이 폭포가 당신 것이냐?” 가가와 도요히꼬는 “이 폭포는 내 아버지 하나님이 만드셨다. 이 폭포의 주인이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니까, 내 것이기도 하다.” 이 때에 그 사람이 손뼉을 치면서, “나는 이 근처 아무 교회 목사인데, 당신 다음 주일 우리교회에 와서 설교를 하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광고란에 대문짝만한 광고를 내 걸었습니다. “다음 주일 설교는 나이야가라 폭포 주인의 아들이 와서 한다.” 그랬더니 그 주일에 교회가 터져 나가도록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요한 계시록의 7교회 중에서 서모나 교회 사자는 가장 가난했지만, 주님은 그를 가장 믿음의 부요한 자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계2:8).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계 2:8, 9). 주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그 믿음을 보시고 그를 높혀 주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 경지에 이르도록 힘써야 되겠습니다. 2.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부한 형제는 누구인가? 유대인이면서도, 당대에 로마정부와 결탁한 지주나 권력자들일 것입니다. 교회는 출석을 하나, 믿음은 전혀 없고 교만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낮아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기복주의 물질관을 가진 신자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적인 물질관은 '물질이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에 내가 네게 복을 주어 그 복으로 만민을 복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창12:1-3). 부한 형제는 자기의 부를 자랑하다가는 주님의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힘들다 (마19:24;막10:25;눅18:25)고 하셨겠습니까? 돈을 얼마를 벌었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벌었느냐가 문제가 될 것이며, 돈을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가 자랑이 아니라, 그 돈을 얼마나 선한 일을 위하여 사용했느냐가 문제가 될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3:17절에서 주님은 교회 사이즈를 자랑하는 라오디게아 교회 사자를 책망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성경은 부한 자들에게 경고하십니다.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약2:10-11). 진심으로 주님을 믿은 우리는 물질로 인하여 낙심하거나 인격에 손상을 입지 말아야 할 것이며, 물질로 인하여 자랑도 하지말고, 선한 사업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특히 물질가지고 남의 인권을 유린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마지막 날에 주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니까요. 샬롬 2013년1월27일 주일아침 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