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아끼라 - 새해를 맞이하면서 -
황수관 박사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 그러나 그는 최선을 다하여 인생을 살고 갔습니다. 사는 날까지 웃으면서 살았고,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과 웃음을 베풀고 건강의 꿈을 주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다른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99-88-234를 외치던 자신은 67세에 먼저 가고 말았으니, 참으로 인간은 아무리 최선을 다 하더라도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따라서 사람이 그저 오래 사는 것만이 복이 아니라는 것도 생각해 봅니다. 성경에 보면, 세상에서 제일 장수한 므두셀라는 1000년 가까이 살았어도(창6:27), 이렇다 할 아무런 기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에녹이라는 사람은 므두셀라 보다 3분의 1밖에 못 살았지만,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고,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창6:21-24;히11:5-6). 이로 보건데 사람이 오래 사는 것만이 반듯이 복이 아니고, 어떻게 살다가 가느냐가 문제일 것입니다. 미국의 시인, 롱펠로의 시 "인생 찬가 The Psalm of Life"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위인들의 생애는 우리를 일깨워준다 우리도 숭고한 삶을 이룰 수 있고 세상을 떠날 때는 우리 뒤, 세월의 모래밭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고 그리하여 후일 장엄한 인생의 바다를 건너다가 외롭게 난파한 다른 한 형제가 그것을 보고 다시 용기를 낼 수 있는 그런 발자국을. 그러니 어떤 운명도 헤쳐 나갈 용기를 가지고 분발하여 일하자 끊임없이 이루며,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일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을 배우자." 이 시는 나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고, 죽은 후에도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삶이 되자는 교훈입니다. Lives of great men all remind us We can make our lives sublime, And departing, leave behind us Footprints on the sands of time; Footprints, that perhaps another, Sailing o'er life's solemn main, A forlorn and shipwrecked brother, Seeing, shall take heart again. Let us, then, be up and doing, With a heart for any fate; Still achieving, still pursuing, Learn to labor and to wait. 새해를 맞이하여 "세월을 아끼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다시 한번 묵상해 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 16) "세월을 아끼라" 영어 번역에는 "세월을 아끼라"는 구절을 1) "Redeeming the time 세월을 속량하라"(KJV)고 했습니다. "Redeem 속량"이란 내가 지은 죄를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회복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지난 날 허송한 세월, 죄악된 세월을 그 무엇을 지불하고 되찾을 수 있겠습니까? "내 청춘을 되돌려다오"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한번 가고 만 청춘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겠습니까? 허송생활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남은 세월만이라도 바로 살도록 힘써야 하겠지요. 2)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주어지 환경과 기회에서 최선을 다하라"(NIV)고했습니다. 더 좋은 때가 오면 그 때 무엇을 하겠다고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현장에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세월을 아끼라"는 우리 말의 이면이기도 합니다. 세월을 아끼라! 시간을 속량하라!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라! 낭비한 시간은 죄입니다. 허송한 시간은 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은 엄격히 말하면 내 시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인명은 재천입니다.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무엇하러 하나님이 나를 세상에 보내셨는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보냈습니다. 만일 하루에 8시간 주어진 노동시간에 주인의 눈을 피하여 4 시간만 일을 했다면 그것은 주인에 대한 죄에 해당하는 것처럼, 우리가 일생을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시간을 내 시간으로 알고 낭비했다면 그것을 분명 큰 죄입니다. 그 죄를 어떻게 해야 탕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으로서는 그 시간을 돌릴 수 없지만, 주님께서 대신 탕감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잘 못 살아온 인생을 마음 아프게 회개하고, 앞으로 새로운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일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을 다시 한번 음미해 봅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의 생활의 최종 목적이 무엇이냐? 나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라고 성경 요리문답 제 1 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샬롬! 2013년 1월6일 주일아침 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