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만남 - 백호의 여로 (11) -
독일의 작가, 한스 칼로사 (Hans Carossa 1878-1956)는 "인생은 만남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인생은 만남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특히 젊은 시절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결정된다. 작금 정치하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이사람 저사람을 만나고 헤어지지만, 그들에게서 과연 인생의 무엇을 배울수 있을까? 그러나 잠깐을 만나고 한번을 만났어도 그 영향이 일생을 좌우하는 그런 고귀한 만남도 있다. 베드로와 같은 사람은 천한 어부였지만, 스승을 바로 만나 일류의 큰 발자취를 남기는 대사도가 되었고, 마태도 천한 세리에 불과 했지만, 역시 스승을 바로 만나 마태복음을 후세에 남기는 위대한 일을 했다. 특히 바울과 같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기 위해서 다메섹을 향해 가든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 2천년 기독교 역사에 크게 공헌한 대사도가 되었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안 좋은 친구를 만나 일생을 불행한 길로 가고, 어떤 사람은 좋은 스승을 만나 일생을 바른 길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다. 나는 어제 친구로부터 이런 글을 받았다. "아무리 인생의 밑바닥을 가는 사람도 평생동안 서너 번의 기회는 온다. 그것은 소리 없이 왔다가 소문 없이 떠나간다. 누구든지 오는 기회를 잘 포착하면, 마침내 절망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지만 그 기회를 잡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인생의 전환점을 찾지 못하게 된다." 오늘의 주제에 적합한 글을 보내 주었다. 여기서 말하는 기회를 나는 '인생의 만남'이라고 보고 싶다. 기회는 공중에 떠도는 전파와 같은 것이 아니고, 분명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온다고 본다. 지난 날 인기리에 상영되었던 드라마 '상도'에 "장사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버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었다. 오늘날 타락한 자본주의 상도는 어떻게 하면 남을 희생시켜서라도 생존경쟁에서 내가 이기느냐에 있지만, 진정한 상도는 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다. 나도 살고 너도 살자는 것이다. 첫 번째에 실패하면, 노름꾼 같이 같은 것을 되풀이하지 말고, 두 번째에도 실하패면 그 원인이 자기의 무지와 욕심에 기인한 것을 깨닫고, 철저히 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뜻을 따라 인생의 상도(나도 살고 너도 사는)를 따르면, 반듯이 자기를 돕는 인생의 만남이 있을 것이다. 한스의 말과 같이 인생은 만남이다. 나는 누구를 만나고 있느냐? 나는 지난 날의 나의 만남을 회고해 본다. 이미 작고 했지만 내가 맨발의 인생을 달릴 때, 내가 처음으로 만난 진정한 친구, 석종이는 함께 지낸 시간은 비록 짧았지만, 나에게 일생을 좌우하는 고귀한 만남이었다. 그는 내가 인생의 기로에서 헤맬 때, 광명의 길로 인도해준 첫 은인이요 친구였다. 두 번째는 그의 어머니, 이영신 사모님이시다. 내가 아직 학교에 다니지 못할 때, 나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분이다. 세 번째는 나의 모교의 김취성 교장 선생님이시다. 내가 고아와 다름 없고 경제적 후원자가 없음을 아시고, 근로장학금을 만드셔서 떳떳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셨다. 한 주일에 한번씩 있는 채플에서 성가대를 지휘하는 명목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하여 주셨고, 신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모교의 성경교사로 초빙해 주셨다. 대학 시절과 신학시절에 만났던 스승님들 중에는 안병욱 선생님과 한경직 학장님이 계신다. 그분들은 나의 사상과 나의 신앙에 깊은 뿌리를 심어주신 분들이다. 내가 안 선생님에게 학문적으로는 무엇을 배웠는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인격과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나라 사랑의 교훈이었다. 대개 철학을 강의하는 교수님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학설을 힘들게 말씀하시는데, 안 선생님은 모든 것을 소화시켜서 알아듣기 쉽게 강의하여 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높으셨고 인격적으로 존경을 많이 받으신 분이었다. 그분에게는 허식과 가식이란 전혀 없었고, 언제나 잔잔한 미소와 따뜻한 인품의 향기를 풍기셨다. 참으로 학문 이전에 인간과 인격을 배울 수가 있었다. 한경직 목사님은 재건된 모교(숭실대학)의 초대 학장이었다. 나는 그분의 주선으로 순교자 자녀 장학금으로 4년간의 학업을 마칠 수가 있었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분의 겸손과 사랑이었다. 한 목사님도 설교시간에는 누구라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고, 모든 사람의 공감대를 이루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감동을 주셨다. 평양에서 피난 내려온 나의 모교는 서울에서 재건당시 일류대학이라는 말은 못 들었지만, 모교의 선배들이 남긴 업적과 전통은 후배들에게 인생의 긍지와 삶의 신념을 심어주기에 넉넉했던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선배님들을 몇몇 열거한다면, * 정치인으로, 조만식, 조병옥 장준하, 문익환, 황성수, * 교육인으로 조응천, 장리욱, 김성식, 박봉랑, 김형석, * 신학과 목회자로서 변린서, 채필근, 유형기, 강태국, 한경직, 김정준, * 음악인으로 안익태, 현제명, 전봉초, 임만섭, * 민족의 시인 윤동주 등 이런 기라성 같은 민족의 지도자들이 우리의 환난 날의 등불 같이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그 당시 숭실대학 뺏지를 달고, 서울대, 연대, 고대, 혹은 이대나 숙대 학생들 앞에 서면 기가 한풀 꺽기곤 했다. 지나고 보니 다 부질없는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었던 것은 학장님의 격려와 학교의 전통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었다. 지난날에 이 민족 앞에서 우리 선배님들 만한 큰 인물들을 다시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참으로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이제 학문적으로 나에게 크게 영향을 주신 분은 72년도에 장로회 신학대학원에서 만난 구약학 교수 문희석 박사님이시다. 그 때 학위 논문으로 "주전 8세기 죄악관"을 지도해 주셨고, 그후 1979에 시작하여 1992년도에 San Francisco Theological Seminary, Advanced Pastoral Studies 에서 "Non-Traditional House Group : A Pastoral Ministry Among The Korean Immigrant Chuches in Los Angeles"라는 주제로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꾸준히 지도해 주신 문희석 박사님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다음으로 잊지 못할 은인은 무궁화유지회사의 사장 유한섭 장로님과 그의 부인 차진정 권사님이시다. 그분들은 내가 학자금 문제로 신학공부를 중단했을 때에 장학금을 주어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했던 분들이다. 만일 나에게 이러한 만남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따라서 내 자신도 이와 같은 만남의 대상이 되어지기를 힘써왔지만, 늘 부족였고,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그후에도 사회생활과 목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은인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들 몇이 있다. 한창 전성시기에 서울 장안에서 '조지김'이라 하면 모르는 친구가 없었다. 조는 조영택이요. 지는 지정덕이요, 김은 김이봉이다. 즐거우나 괴로우나 삼총사는 청춘의 날을 함께 즐겼고, 환난의 날에는 함께 울며, 위로하며, 기도했다. 목회자의 안식일인 월요일이면 함께 만나서 지난 주일 설교를 운운하고, 다음 주일 설교를 설계하기도 했다. 미주에 와서도 우정을 나누는 몇몇 친구들이 있다. 우리는 서로 떨어져 있어도 날마다 인터넷으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고독한 삶에 위안을 주고, 세상에 돌아가는 아름다운 기사가 있으면 어김 없이 서로 공유한다. 끝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내 아내와의 만남이다. 일생을 살아가는데 어떤 때는 집안에서 큰 소리가 나는 때도 있지만, 그것은 인간이 지닌 어절 수 없는 단면이요, 남녀가 만나서 하나가 된다는 것을 옛 어른들이 이를 천정배필(天定配匹)이라 했다. 하늘에서 정해주셨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은 부부간의 관계를 인륜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부부의 만남도 천륜이다. 요즘 세상에는 부부가 하도 쉽게 헤어지니깐, 부부의 만남을 인륜이라고 했는지 몰라도, 성경에는 천륜으로 되어있다(창2:18-25), 예수님의 교훈을 봐도 그렇다.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마 19:6)고 했다. 이제 나의 은사이신 안병욱 선생님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 장을 맺으려고 한다. "실존철학자 야스퍼스는 인생의 만남에 두 가지 형태를 말했다. 하나는 곁사람과 겉사람의 만남이요, 다른 하나는 인격과 인격의 실존적 만남이다. 나와 너와의 깊고 성실한 만남, 그것이 우리가 갖고 싶은 만남이다. 이 만남 위에 인생의 행복이 건설되어야 한다. 나의 참과 너의 참이 만나는 것처럼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고, 또 기쁘고 행복한 일이 없다. 좋은 부모를 만나는 일, 성실한 친구를 만나는 일,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일, 믿음직한 제자를 만나는 일, 진실한 애인을 만나는 희열, 좋은 남편, 착한 아내를 만나는 행복, 참되고 의로운 인간을 만나는 기쁨, 모두가 다 나와 너와의 성실한 만남이다. 오늘 우리는 허다한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들이 모두 돈 거래의 대상만으로 만 보인다면, 24시간의 하로 하로의 생활의 연속인 우리의 일생을 무엇으로 평가해야 할 것인가." (서울:도서출판 아카데미, 1977, 16쪽). 지상의 진정한 만남은 내생에서도 다시 만나는 영원한 만남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처럼 고독한 존재가 어디에 또 있겠는가. 샬롬! 백호 (이글의 현재시간: 2002-5-21,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