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출발 - 백호의 여로 (9) -
하우스보이로 취직이 된 이래 한 1 년간은 참으로 즐거운 시절이었다. 배고픔도 슬픔도 다 잊고, 인생의 꽃향기도 맡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밤이면 YMCA에 나가 영어공부도 할 수 있었고, 주일이면 대구영낙교회 학생회에 나가 좋은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다. 그때 대구에는 서울에서 피난 내려온 모든 학교 학생들이 연합으로 공부하는 연합중고등학교가 있었다. 그때 대구영낙교회 학생회에는 연합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경기고등학교 학생으로 후에 서울대학교 교수가 된 백낙청 군도 함께 어울려 지내는 사이가 되었고, 나는 학생회의 음악부장이 되어 학생회 성가대를 조직해서 밤예배 찬양은 학생회가 맡아했다. 한번은 어른 성가대 지휘자가 나오지 못하는 바람에 성가대장이 날보고 부탁을 해서 까까머리 소년이 제일성가대 찬양을 지휘하는 영광을 누린 적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제정신으로 산 것 같지가 않았다. 그때만 해도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것을 학생들이 뻔히 알면서도 학생회에서 나를 부회장을 시켰으니 내가 무슨 배짱으로 감당했는지 지금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나도 학생 행세를 한다고 교복도 얻어 입고 학생모자도 얻어 쓰고 다녔으니 참으로 가관이었다. 나는 1 년간을 이렇게 꿈길 같은 길을 걸었으나, 하나님은 그 길을 돌리시고 말았다. 그해 가을에(1952년도) 미 8 군사령부가 이태원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취직한지 1년만에 나는 또다시 실업자가 되었다. 석 달을 고모할머니 사위 집에서 놀고 먹으니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모할머니는 어머니의 고모이시다. 남편이 어린 딸만 둘을 남기고, 일찍 세상을 떠나 고생하며 사실 때, 아버지의 도움으로 딸들은 신명여고에 다닐 수 있었고, 큰딸은 졸업 후에 아버지 친구 목사 아들에게 시집을 보내어 넉넉하게 사는 중, 사위는 남산교회 장로가 되었고, 딸은 권사가 되었다. 고모할머니가 노경에 큰 딸집에 와서 함께 사셨는데, 나와 한방을 쓰면서 나를 친손자 같이 보살펴주셨다. 그러나 아무리 외척 일가지만 3 개월을 놀고 있으니 눈치가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집을 떠날 생각을 했다. "나는 갈길 모르니 주여 인도합소서. 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합소서 아무 것도 모르니 나를 가르치소서 어찌해야 좋을지 나를 가르치소서 아기 같이 어리니 나를 도와 줍소서 힘도 없고 약하니 나를 도와 줍소서 맘이 심히 슬프니 나를 위로합소서 의지 없이 다니니 나를 위로합소서" 나는 이렇게 기도하면서 대구 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것은 부산으로 내려가서 다시 막노동이라도 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전시라 그랬는지 기차표를 예매했는데, 그날의 지정된 차표가 다 매진되어 할 수 없이 그날에 가지 못 하게 되어, 나는 발길을 교회로 돌렸다. 그날이 1952년 12월 31일, 학생회에서는 망년회가 있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자격지심에서 말없이 부산으로 내려가려고 했던 것이다. 참으로 암담하고 절망적인 날이었다. 학생들은 밤 12시까지 즐겁게 놀다가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데, 갈 곳이 없는 나도 따라 나서는데 내 신발이 없어졌다. 누가 내 신발을 훔쳐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낙담하고 있는데, 그때에 강신명 목사님의 아들, 강석종 군이 난감해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자기도 집으로 가지 못하고 나와 함께 교회에서 그 밤을 세웠다. 나는 그날 밤 석종에게 지금까지 지나온 신세타령을 말하고 있는데, 석종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나에 대한 동정과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부실한 삶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 였을지도 모른다. 1953년 1월 1일, 내 인생의 새 날이 밝아왔다. 석종군이 날 보고 자기 집으로 가서 떡국을 먹자고 한다. 그 소리는 나에게는 복음이었다. 그런데 신고 갈 신발이 없었다. 맨발로 뛰기를 시작했다. 사모님이 밤새 기다리시다가 함께 들어서는 우리를 보시고 너무 너무 반가워 하셨다. "안 그래도 객지에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번 부르려고 했는데, 마침 잘 왔다"고 반겨주셨다. 그때 강신명 목사님은 프린스턴 신학교에 유학 중이시라, 사모님이 아들 때문에 무척 신경을 쓰시던 때이었다. 떡국을 맛있게 먹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석종이는 "형! 더 놀다가 점심이나 먹고 가라"고 말린다. 사실 그 소리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점심을 먹고 일어서려고 하니까, 그때는 사모님이 말린다. "다른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오늘 밤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신다. 그렇게 지나게 된 것이 몇 달이 되었다. 그것은 석종군이 나의 인생고백을 듣고 난 후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서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나를 따라 다녔기 때문에, 사모님은 나를 붙들어 두면 목사님이 유학에서 돌아오실 때까지 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모님이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지금 석종이가 어떤 사정으로 휴학 중에 있으니, 목사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우리 집에 있으면서 석종이와 함께 공부할 길을 찾으면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모님의 주선으로 YMCA 영수학원에 나가기로 했다. 그때 원장님은 YMCA 총무이신 이원우 목사님이었는데, 우리는 목사님 자녀라고 무료로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나는 그때에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영어 교제는 "NATIONAL"이였다, 나는 BOOK IV를 선택했다. 제 1학년은 고향의 목동시절에 King's Crown으로 공부한 셈이었고, 제 2권은 지난 해 하우스 보이 시절에 YMCA에서 공부했고, 제 3권은 건너뛰고, 이제는 고 1 반에 들어가서 National Book IV를 공부했다. 제 4 권 첫머리에 영국의 시인 John Keats 의 "On the Grasshopper and the Cricket"라는 시가 나오는데, 나는 그 시를 달달 외다싶히 했고, 지금도 무척 사랑하는 시 중의 하나이다. 그 때 선생님은 후에 총신대 총장이 되신 김희보 전도사님이었다. 이 시는 추억에 서린 나의 애송시이기에 여기에 실어본다. On the Grasshopper and the Cricket by John Keats The poetry of earth is never dead: When all the birds are faint with the hot sun, And hide in cooling trees, a voice will run From hedge to hedge about the new-mown mead; That is the Grasshopper's--he takes the lead In summer luxury,--he has never done With his delights; for when tired out with fun He rests at ease beneath some pleasant weed. The poetry of earth is ceasing never: On a lone winter evening, when the frost Has wrought silence, from the stove there shrills The Cricket's song, in warmth increasing ever, And seems to one in drowsiness half lost, The Grasshopper's among some grassy hills. 여치와 귀뚜라미에 관하여 대지의 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새들이 뜨거운 태양에 지쳐 서늘한 나무 속에 숨을 때, 한 소리가 신선한 목초지의 이 울타리에서 저 울타리로 달리리니; 그것은 여치의 울음 소리, -- 그는 여름의 즐거움을 선창하고, -- 그 기쁨을 결코 끝내지 않는다; 재미있게 놀고 패곤해 지면 그는 어딘가 쾌적한 풀밭에서 편히 쉬니까 대지의 시는 결코 그치지 않는다: 정막한 겨울 저녁, 서리가 정적을 자아내고, 난로가에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는, 온기 속에 점점 더해갈 때, 졸음으로 몽롱해진 사람에게는 어느 우거진 풀밭의 여치 소리로 들리리니 이렇게 얼마간 준비를 하고, 정식으로 학교에 다니기로 했는데, 1953 년 봄, 1학기는 벌서 시작이 되었을 때이었다. 그때 평양에서 피난 온 숭실학교가 김취성 장로님의 노력으로 재건되어 대구 성광교회당을 빌려서 개학을 했다. 학생 수가 고1, 고2 합쳐서 약 50여명이었고, 피난살이로 인해서 시기를 놓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모님과 함께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서 사정을 했더니, 평북 도지사의 추천서를 가져오면 가입학을 시켜주겠다고 하셨다. 그때 평안북도 도지사는 성광교회의 서누원 장로님이었다. 추천서를 들고 갔더니 간단한 시험을 보자고 하셨다. 교무주임이신 김영환 목사님이 영어 시험을 보는데, 마침 내가 YMCA에서 공부한 NATIONAL Book IV의 첫 페이지, 'On the Grasshopper and Cricket'를 여시더니 이것을 읽고 해석을 하라고 하신다. 그것은 내가 외다싶히 했던 것이라, 줄줄 읽고 해석을 했더니, 흐뭇해하시는 눈치였다. 다음에 4권 중간쯤을 펼치는데 제목이 "Water"라는 장의 중간쯤을 읽으라고 하면서, 문장 초두에 "No"가 있으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신다. 그래서 선뜻 대답하기를 "문장 초두에 'No'가 있으면 그것은 문장 전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영어는 그만하면 됐다고 하셨다. 이번에는 피아니스트 한동일의 외숙되시는 박동윤 선생님이 수학시험을 보자고 하시는데, 그것은 X Y 좌표를 그려 넣는 평면기하 문제였다. 나는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솔직히 사정을 했다. "선생님, 제가 영어는 독학을 해서 웬만큼 했으나 수학은 전혀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가입학이라도 시켜주시면, 열심히 공부해서 만회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숭실고등학교 2학년에 가입학을 했다. 그때 고등학교 2학년에서는 러브의 미분을 공부할 때인데 평면기하도 제대로 모르는 나는 선생님이 칠판에 풀어 나가는 미분의 기호를 노트에 받아쓰기조차 힘들었다. 앞 줄을 미쳐 베껴 쓰기도 전에 뒤로 넘어가서 앞줄을 지워버리곤 했다. 할 수 없이 친구의 노트를 빌려다가 베껴두었다. 다음날 고물서점에 가서 기초 수학 참고서를 모조리 구입해서 그때부터 밤을 세워가면서 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제 중간 시험이 되었는다. 다들 실력이 그만 그만 했는지는 몰라도 수학시험 문제만은 예제를 몇 문제 주고 그 중에서 몇 문제를 풀라고 했다. 나는 예제를 외우기 시작했다. 참 미련한 공부였다. 어떻게 수학을 외워서 한단 말인가? 그래도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아직 미분을 풀어 나갈 기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렇게 해서 겨우 낙제를 면하고, 계속 공부해서 학기말 시험에는 외우지 않고 문제를 풀어 나갈 수가 있었다. 그때 나에게 가장 감격스러웠던 것은 박동윤 선생님이 나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채플 시간에는 날보고 찬송가 반주를 하라고 하셨다. 오르간 공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목회시절에 짬짬이 교회에서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찬송가 정도는 4부로 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졸업할 때까지 근로 장학금을 받아 공납금이 면제되었다. 한 가지 기억에 깊이 남는 것은 그 해에 학교에서 추수감사절 축제가 있었는데, 박동윤 선생님이 지휘를 하셨고, 내가 반주를 하게 되었다. 곡목은 Mozart의 Gloria 합창곡이었다. 그 곡은 빠르고, 아마춰에게는 반주하기가 쉬운 곡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열심히 연습해서 잘 해냈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 아내와 함께 어떤 곡을 감상하거나 성가를 들을 때, "저건 저렇게 하는 것이 아닌데.."라고 한마디 하면 다른 일에는 자기 자랑한다고 핀잔을 주는 아내도 음악에 대해서만은 "그러기에 당신은 목회를 하기 보다는 음악을 전공해서 음악목사가 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은근히 편을 들어준다. 아마도 나는 선천적으로 음악적 DNA를 많이 타고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목사가 된 것을 후회하거나 원망해 본 일은 한번도 없었다. 만일 누가 "너는 세상에 다시 태어나면 뭐가 되고 싶냐?" 고 묻는다면, "나는 목사가 되어 지금까지 제대로 하지 못한 일을 다시 한번 잘 해 보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1953년 1월 1일, 맨발로 출발하여 여기까지 왔지만, 그것은 전혀 나의 길을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섭리였고, 이미 타계한 내 사랑하는 친구 강석종 군의 우정과 그의 모친 이영신 사모님의 크신 은덕이었던 것이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이제 하루 하루를 주를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샬롬! 2012/09/23 주일아침 백호 ====================
둥지 2012/09/23, 13:24:14  
나의 마음을 주님께 드렸을 때...
이미 주님이 나의 마음에 계서서..
주님의 이야기를 쓰고 계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참회의 눈물로 감사를 드렸던 첫 만남을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도 글을 읽으면서...
백호님에게 역사하신 주님의 story에
찬양과 영광을 올립니다...
아픈 역사의 희생양이 되었던 시절이지만..
한권의 주님의 story 를 적을 수 있음... 얼마나 부러운지요...~~
감사드리며...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