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 백호의 여로 (6) -
1992년 미국 LA에서 있었던 4.29폭동 때, TV에 중계되는 광란의 불길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 와중에 흑인들, 히스패닉 청소년들이 불타는 현 장에 뛰어들어 남의 물건을 닥치는 대로 훔쳐가는 모습이 중개되었다. 그 때에 사람들은 혀를 차면서 저런 못된 놈들이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인가 하면서 욕을 퍼부어 대는데, 나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속으로 "나도 저랬는데..." 하면서 과거를 회상해 보았다. 1950년 9월 15일, 인천 월미도 상륙작전이 있던 며칠 전, 인천 상공에 미공군 정찰기가 한번 돌고 나면 얼마 후에는 저쪽 팔미도 부근에 정박 중인 군함으로부터 포탄이 날아와서 인민군 주요부대와 군수물 창고에 포탄이 명중되어 불이 붙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송림동에서 약 2K 떨어진 군량미 창고에 포탄이 떨어져서 불타기 시작했다. 인민군들은 그때 이미 철수하기 시작했고, 여름내 굶주렸던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그날 밤 그곳으로 모여들었는데, 그때 나도 어머니도 정신 없이 그곳으로 달려가서 한 가마씩 지고 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와보니 그것은 아직 정미하지 않은 겉보리쌀이었다. 여름내 풀 죽도 제대로 못 먹은 처지에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아마도 사람이 극한에 달하면 마력(魔力)이 생기는 것이 틀림없었던 것 같다. 어디 그 뿐인가? 다음날 새벽에는 동리 사람들은 주안 쪽에도 쌀 창고에 불이 났다고 하면서 그리로 몰려가는데, 나도 따라가서 쌀 한 가마니를 걸머지고 왔다. 그런데 쌀 한 가마는 정미하지 않은 보리 한 가마보다는 배나 무거웠는데, 내가 어떻게 그것을 날랐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마귀들린 사람은 철창이라도 끊는다고 하더니, 아마도 그때 나는 마귀의 힘이 발동했던 것 같았다. 정말 그것은 내 일생에 있어서 목숨을 건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숨어있던 인민군에게 발각이라도 되었으면 틀림없이 총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앞으로 전쟁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처지에 우리는 이렇게 쌀가마를 가져다 놓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 시로 이밥을 지어 온 식구가 오래만에 배불리 먹고, 겉보리도 절구에 찧어 며칠간 참으로 배가 터지도록 잘 먹었다. 그런데 국군이 상륙하여 3일 만에 동회의 조사원들이 나와서 이번에 동민들이 가져온 쌀가마는 군량미라고 하면서 다 거두어 가고 말았다. 인민군 시대에는 인민군 군량미요, 국군시대에는 국군 군량미요, 가난한 백성의 양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조사원들도 그렇지, 경우가 바른 사람들이었더라면, 그렇게 수고해서 가져온 것이니 조금이라도 남겨놓고 깄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련만 몽땅 가져가고 말았다. 나중에 생각하기를, 차라리 가져가기를 잘했지, 그걸 그대로 숨겨놓고 다 먹었더라면 평생 두고 두고 군량미 착복한 도둑놈이 될번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기쁨과 포식은 사흘만에 끝나고 말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 쌀가마가 불타는 창고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다 재가 되어버렸을 것을 그렇게라도 해서 국군에게 돌아갔으니 다행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그것은 참으로 위험 천만한 모험이요, 만행이었다. 왜냐하면 그 와중에 많은 사람이 다치기도 하고, 죽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밤의 일을 회고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그날 밤 우리 모자가 인민군의 총에 맞아 죽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1) 우선 아무 죄없는 어린 동생들이(7살, 6살) 갑자기 천애고아가 되어 그후 말할 수 없는 험한 인생을 살아갔을 것이다. (2) 장례식 날, 본교회 목사님은 얼마나 곤욕스러운 설교를 했겠는가 . (3) 장례식에 참석했던 교우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하지만 목사의 가정이 이렇게 되다니 하면서 매우 불편한 마음으로 돌아갔을 것이고 (4) 사선을 넘어온 우리 가정이 겨우 이렇게 끝을 맺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아니었다. 죽지 않고 살았다. 왜? 어떻게? 이것은 나의 간증이다. 옛부터 인명은 재천이라 하였다. 그 때 내가 산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믿는다. 내가 죽을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 서원을 했던 것이다. 살려만 주시면 이후에 목사가 되겠다고. 나 비록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은 참고 용서하시고 그 약속을 지켜 주셨던 것이다. 나는 그 일로 인하여 한 가지 깊이 깨달은 것이 있다. 보통 사람은 배가 정 고프면 도둑질도 하고, 못할 짓이 없다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며칠을 굶은 병사들이 전사한 인육까지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는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서 십계나 벤허 이상으로 가장 감명깊게 본 영화는 서구 사람들이 '제 2의 성서'라고 부르는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있기 직전, 라브리 마을의 날품팔이 노동자 장발장이 누이동생과 조카 일곱을 부양하며 사는데 하루는 배가 많이 고픔 끝에 빵 하나를 훔치다가 체포되어 3년형의 선고를 받는다. 투옥된 장발장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여 틈만 있으면 탈옥을 시도하다가 그로 인하여 형이 19년으로 늘어난다. 그는 19년 만기를 채우고 출옥하여 사회로 나왔으나, 이미 그는 중년이 되었고,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면서도 적개심을 품은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허름한 옷차림에 피곤에 찌든 몰골을 한 장발장은 전과자라는 소문 때문에 아무도 그에게 음식이나 잠자리를 제공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사나운 개에 물려 잘 걸을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 성당 벤치 위에 쓰러져서 '나는 개만도 못한 인생이로구나!' 탄식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한 부인이 '저 성당의 사제관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해 보라'고 권한다. 그가 사제관 문을 두드릴 때 인자한 미리엘 신부는 그를 환대한다. 장발장은 신부의 따뜻한 음식과 깨끗한 잠자리로 환대를 받았음에도, 순간적인 충동으로 사제관의 은-접시를 훔쳐 가다가 순경에게 잡혀 사제관으로 끌려 온다. 미리엘 신부는 그 후에 벌어진 일을 생각하여, 그것은 장발장에게 준 선물이라고 변호해 준다. 그리고 '내가 저 은-촛대까지 줬는데, 왜 두고 갔느냐 하면서 촛대까지 건네 준다. 돌아가는 장발장에게 미리엘 신부는 이렇게 타이른다. '정직하게 살아가라. 그대의 영혼은 내가 사서 하느님께 바쳤노라'고. 장발장은 이렇게 용서를 받고 자기 길을 가다가 한 언덕에 앉아 저 멀리 흘러가는 흰구름과 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감회에 젖는다. "대지 보다 넓은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다지. 바다보다 넓은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하늘이겠지. 하늘보다 더 넓은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이것은 장발장이 새로운 인생을 결단하는 순간이다. 미리엘 신부는 버림받은 한 영혼이 사제관의 은-접시나 은-촛대 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장발장에게 일깨워 주었다. 이것이 오늘의 교회가 세상에 존재할 이유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빅토르 위고가 설파하고 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은 법도 형벌도 아니고, 죄인에 대한 이해와 사랑과 용서라는 것이다. . 사랑과 용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사랑, 사랑 하지만 용서를 못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용서는 사랑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가르친 주기도문에 보면, 사랑이라는 말은 한번도 없고, 용서라는 말은 두 번이나 있다. 과연 용서는 사랑의 최고봉이요, 사랑의 열매이다. 만일 주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일일이 열거하고 폭로하신다면 내가 어떻게 낯을 들고 교회에 출석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주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덮어 주셨기에 오늘도 이렇게 힘을 내어 부족한 이글을 여기에 올리고 있다. 그렇다. 나는 용서받은 죄인이다. 따라서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면서 살아야 한다. <오늘의 말씀>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주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편103:10-14) 샬롬! 2012/9/2 주일아침 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