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야드 바셈의 교훈

- 6.25 62주년을 맞이하면서 -
예루살렘 서쪽 헤르즐 언덕(Mount Herzl)에 10여만평 규모의 대지위에
세계 2차 대전 때 나치에게 학살당한 600만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박물관이 있는데, 그것을 '야드 바셈 yad vashem' 이라고 합니다.

'야드 바셈'은 히브리 말로 '기념물과 이름'이란 뜻인데 이사야서 56장 5절에서
따온 말로써,  전시실에 들어서면 나치에게 학살당한 사람들의 이름이 스피카를 
통해서 하나 하나 호명되고 있으며, 그 때에 당한 그 민족의 고난과 아픔, 
모욕과 수치를 담은 사진들, 살해 도구와 장비, 그리고 비인도적인 나치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야드 바셈의 건립 목적이 어디 있었던가?  그것은 그와 같은 고난의 역사를 
후손에게 잘 전달함으로 다시는 그와 같은 고난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과
나치의 만행을 세계에 알림으로 불의와 악의 세력은 반듯이 언젠가는 망한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었습니다.

1988년도에 제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에 크게 감명 받은 경구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 그 때에 박물관 전면 우측에 (지금은 전시관 
2층에 있다고 함) 동판에 새겨진 경문입니다. 
"Forgetfulness leads to exile, while remembrance is the secret of 
 redemption"  이것을 직역하면 "망각은 유배에 이르게 하고,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 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모르는 방문객은 이 경구의 뜻을 바로 
 해석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의 역사인 구약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경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난 날 조상들의 고난의 역사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망각하면 바벨론 포로와 
같은 운명에 다시 처하게 된다.  그러나 지난 날 애굽에 종되었던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잊지 않고  그와 맺은 언약을 지키면,어떤 고난 
속에서도 구원받게 된다는 뜻이 그 경구 속에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전 역사가 그 짧은 경구 속에 함축되어 있는 것이지요.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민족의 비극, 동족상잔의 비극을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지금 한국의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6.25를 물어보면 대부분이 
모른다고 하며, 많은 대학생들은 6.25가 북침이라고 대답을 한다니 참으로 
얼마나 잘못된 역사의 외곡입니까?   이대로 나간다면 조국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은 교육의 책임이요. 부모의 책임이요. 우리 교회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제가 1988년도에 yad vashem을 방문했을 때, 안내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인들은 훈련을 마치면 반드시 방문하는 두 곳이 있는데, 
(1) 최후의 한사람까지 로마에 항전하다가 죽은 마사다 요새와 , 
(2) 야드 바셈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고난의 역사를 바로 알 때 미래를 바로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군인들에게 교육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2002년 2월,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과거 독일인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용서를 빌며, 아울러 나와 나의 세대의 잘못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한다”
고 사죄했고,  2005년에는 이스라엘과 독일 수교 20주년 기념에 즈음하여 
독일의 퀼러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야드 바셈이었습니다. 
2006년 1월 30일에는  이스라엘을 방문한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 곳에서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애도를 표하면서 "과거를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을 방명록에 남겼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다.  아무런 사과를 받은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쉽게 잊어버리는 게 탈입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라! Forgive, but not forget!"
이것은  yad vashem 의 또 하나의 경문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망각하면 미래의 약속도 없을 것이라는 경문입니다.

여기서 6.25의 비극을 겪은 우리는 후손들에게 반듯이 그 고난의 역사를 바로 
가르쳐 줘야 할 것입니다. 

1. 기억하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된 후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당부하였습니다.

" 이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유월절)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군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군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출 12:26-27).
 
 너희가 애굽의 노예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하나님이 구출했다는 사실을 잊지말라고 했습니다.
  
 40년후에 다시 모세는 세상 떠나기 전에 유언으로 2세들에게 당부했습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32:7).

고난의 역사를 부모에게 물어서 미래의 역사를 전망하라는 것입니다.

기억하라(remember) 
생각하라(consider) 
물으라(ask)

이와같이  과거의 역사를 바르게 기억하는 민족은 결코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2. 지금도 유대인은 매년 유월절 행사를 통해 고난의 역사를 재현합니다.

그들의 유월절 예식에는 14 가지 순서가 있는데, 
세 번째는 눈물을 상징하는 소금물에 야채를 찍어 먹는 것이요. 
네 번째는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과자를 쪼개면서 애굽의 노예생활의 가난을 
기억하는 것이요. 
아홉 번째는 쓴 나물을 쓴 양념에 두 번 찍어 먹는 것이요. 
열 번째는 누룩 없는 과자와 쓴 나물로 만든 샌드위치를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입에 쓴 음식을 먹음으로써 지난날 선조들의 고난의 역사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6.25와 같은 민족의 수난을 기념하는 날에는 교회적인 
행사로써 단 한끼만이라도 금식을 하거나 쓴 음식을 먹음으로써, 조상들이
고난의 역사를 상기하는 행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어려웠던 시절, 배고팠던 시절을 교훈으로 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식들은 부모가 지난 날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궁상을 떤다고 듣기를  싫어합니다.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지요. 

우리 세대에 "꿀꿀이 죽"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6.25 당시에 너무 먹을 것이 없을 때에, 미군부대에서 쓰레기 통에 먹다 버린
음식을 가져다가 다시 끌여서 사장 노점에서 파는 것을 사먹던 것을 돼지나 
먹을 음식이라 해서 꿀꿀이 죽이라 했지요. 저도 사 먹어 봤습니다. 정말 영양가 
100% 였지요.

그런데 요즘은 우리가 좀 살게 되었다고 먹다 남은 음식물을 마구  쓰레기 통에 
버립니다. 정말 하나님이 노하실 일을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 자녀가 그런다면, 바로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얘야 음식 버리면 벌받는다. 지금 북한이나 아프리카에는 굶어죽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이 생명 같은 음식을 그렇게 버려서야 되겠냐?." 
이렇게 타 일러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우리는 내 자신이 먼저 실천하고 가정과 교회에서 잘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국민소득 2만달라를 넘기고, 세계에서 9번째로 무역 수지 
1조 달라를  넘기는 무역대국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면에 OECD 회원국 
가운데서 자살율이 제일 높은 나라가 우리 나라요.  이혼율이 제일 높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경제성장은 행복지수와는 역비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6.25 전쟁! 
그 때에 국군 16여만명이 전사했습니다.
유엔군도 4만명이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아서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은
그들의 덕분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빚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의 과거를 잊지말고, 
지난 날의  우리와 같이 고난 당하는 자를 생각하여
뭔가 우리도 그들에게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이 지구 촌에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저는 얼마 전 "울지마, 톤즈!"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48세의 나이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수단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보고 크게 감동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직접 그 드라마를 보실 분은 다음 사이트를 열어보십시오.

http://www.boseong51.net/bbs/bbs.htm?dbname=B0114
&mode=read&premode=list&page=2&
ftype=&fval=&backdepth=&seq=225&num=206

이렇게 살아남아 있는 우리는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들을
우리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빚진 우리 인생이 살아가는 삶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부지런히 일하고 정직하게 벌어서, 그 중에서 단 얼마라도
교회와 선교기관을 통해서 그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펼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물질이 풍부해도 이웃의 어려움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불만과 
불행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날이 없을 것이고, 비록 적은 것이라도 이웃을 
위해서 베풀 줄 아는 사람은 그 적은 물질 속에서도 힝싱 기쁨과 감사와 
행복감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Forgetfulness leads to exile, while remembrance is the secret of redemption."
"망각은 유배에 이르게 하고,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

샬롬!
2012/6/17
주일아침
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