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지 말라” - 그릇된 비판에 대하여 -
마태복음 5 장, 6장, 7장을 예수님의 '산상보훈 山上寶訓'이라 하고, 그 내용을 '천국 시민의 헌장'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 7장에 보면 천국시민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공연히 잘난척하여 남을 비판하다가 돼려 욕이나 얻어먹지 말고, 반면에 남에게 대접 받고 살고 싶으면 네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7:1)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 .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마7:12)라고 했습니다. 즉 성경의 가르치는 핵심이 바로 이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남을 비판하지 말라" "남을 대접하라" 예수님은 우리가 남을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우리 인간은 남을 비판할 만큼 완전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뺀 후에 밝은 눈으로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7:3, 5)고 하십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와이 주 상원위원으로 당선된 이노우에 씨가 다른 동료 관리들과 함께 선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관경이 텔레비전에 방영되었습니다. 다른 모든 동료들은 오른손을 들고 선서를 하는데, 이노우에 씨는 왼손을 들고 선서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한 시청자가 시비를 걸었습니다. "아니, 저 이노우에 씨는 왼손과 오른손도 구별할 줄 모르는가!" 실은 이노우에 씨에게는 그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2차 대전 때 전쟁터에서 오른 팔을 잃었던 것입니다. 옛날 유명한 랍비 힐렐(Hillel)은 "네가 그 사람의 환경이나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비판하지 말라' 이 말은 '정죄하지 말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헬라 말 원문의 '비판 krino'이라는 단어는 '평론' 혹은 '정죄'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세상에는 선의의 평론과 악의의 비판도 있고, 불의한 오판도 있습니다. 악한 맘을 품고 형제의 행위를 비판하는 것은 이미 정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소설가 길버트 프랑코(Gilbert Frankau 1884-1952)는 그의 자서전에서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그의 어머니의 집은 대부분 유명 인사들의 모이는 싸롱이었는데, 한번은 그의 어머니가 내객의 여흥을 위해서 오스트랄리아의 젊은 소프라노 가수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노래를 부른 후 길버드의 어머니는 "아, 저 치가 떨리는 목소리! 저 가수는 다시는 입을 벌리고 노래를 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누굽니까. 그가 바로오스트랄리아의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 멜리 멜바 Mellie Melba(1861-1931)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길버트는 인간의 무지한 비판이 얼마나 어리석다는 것을 잘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랍비들은 백성들에게 "자기 이웃을 좋게 판단하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좋게 판단을 받는다"고 했으며,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고, 저 세상에서 상받는 일 여섯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1. 연구 2. 병자 방문 3. 손님 대접 4. 기도 전념 5. 율법 안에서 자녀 교육 6. 다른 사람의 최선을 생각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러면 먼저 우리 눈의 들보를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들보, 그것은 다른 말로 색안경과도 같습니다. 우리의 선입견, 편견, 고집, 자기 주장 등, 이런 것들이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게 하는 것들입니다. 라브라도-라이트(Labrado-rite)라는 수정은 첫 눈에는 희미하고 매력이 없어 보이지만 이리 저리 돌리다가 어떤 자리에 오면 광선의 조사 각도가 맞아서 갑자기 찬란한 청색이나 황금 색 빛이 난다고 합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질그릇 같이 연약한 존재지만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빛을 발산하는 보화가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하시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보배를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담아주신 것은 그 엄청난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터 나온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라고 했습다(고후 4:6,7). 겉모양은 보잘 것 없는데, 오히려 그 속에 빛나는 보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형제의 외적인 결점을 보지 말고, 그 속에 빛나고 있는 '라브라도-라이트'를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서와 예언서의 정신이다"(공번 마7:12). 샬롬! 2012년 4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