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동역자 -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헌신 -
위대한 인물의 배후에는 위대한 내조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가 세계 선교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배후에 많은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헌신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중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왔을 때에 거기서 그는 본도 출신인 아굴라라는 유대인을 만났는데, 그는 주후 52년에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은 로마를 떠나라는 추방령을 내렸을 때 자기 아내 브리스가와 함께 고린도로 온 사람입니다. 그는 장막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도 장막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그를 찾아가 그 집에서 일하면서 먹고 자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식일 마다 회당에 나가서 복음을 선포하고, 다음날 주일이면 그 집에서 직공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정교회였습니다. 처음에는 브리스가가 바울을 그리 대단치 않게 봤을지도 모릅니다. 키도 짤막하고, 생김새도 별로고, 눈도 잘 보지 못하고, 고용인이니까 약간 깔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바울의 강론에 큰 은혜를 받아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있다가 에베소로 갈 때에 브리스가 내외도 함께 했고, 에베소에서 3 년간 복음을 전하고 바울이 로마로 갈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그라우디오 황제가 피살 당한 뒤에. 브리스가 내외가 미리 로마에 가서 자리를 잡았던 것입니다. 그 때에 사도 바울이 로마로 향할 준비로 로마서를 써서 로마교회 사자에게 보낼 때에, 로마서 16장에서 보는대로, 이미 로마교회에서 활동 중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 대해서 문안을 보내는 글이 나옵니다.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는 중에 제일 먼저 브리스가와 아굴라에 대한 문안이 나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리라도 내어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또 저희 교회에게도 문안하라."(롬16:3-5절 상반) 여기서 우리가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어떻게 헌신했는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1.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자기의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동역자'(fellow worker)란 일을 같이 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멍에를 같이 메는 사람입니다(빌 4:3). 힘드는 일을 함께 짊머젔다는 뜻입니다. 직장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지만 그 일을 하는 목적이 같으면 그것이 바로 동역자라는 뜻입니다. . 그러면 그들이 일하는 목적이 무엇이냐? 여기 문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즉 그리스도 중심의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란 히브리어의 '메시야' 입니다. 즉 메시야의 일을 한다는 뜻입니다. 당대의 세상에 흩어진 나그네(디아스폴라)에는 유일한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율법주의자들의 횡포와 로마 제국주의자들의 압박에서 해방되어 주님이 다스리는 메시야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었습니다. 인간의 이권이나 명예나 권세를 얻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일, 그리스도의 왕국,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함께 일하는 일꾼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복음을 전한다 하면서도, 복음을 가로 막는 일을 하고 있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교세를 확장하거나 교인수를 늘리려는 과정에서 분쟁과 교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처음 복음을 선포하실 때에 읽으신 말씀에서 복음의 주제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이 복음을 위해서 바울과 함께 멍에를 같이 메었습니다. 2.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주님의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바울이 에베소에서 죽을 뻔했을 때에(행19:30).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작업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 때의 일을 회상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란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 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을 줄 알았으니..."(고후1:8,9) 이 처럼 바울의 생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도왔습니다. 3. 또한 그들 부부는 이방인교회에서도 종경을 받았습니다. 유대인은 선민 사상이 있어서, 인종차별이 심했고, 이방인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까지 저주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방인 교회에서도 존경을 받았습니다. " 나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철저한 민족의 주체성과 신앙을 고수함으로 로마에서 추방까지 당한 일도 있지만, 이방인과도 깊은 친교를 나누면서 선교의 본을 보인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인종차별이 심한 것 같습니다. 이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처럼 이방인 교회에서도 존경받는 신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브리스가는 모범적인 아내였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이름이 6번 나오는데. 처음의 2 번은 남편의 이름이 먼저 나오고 나중에 4 번은 브리스가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그것은 그만 큼 복음사역에 브리스가의 활동이 컸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의 선교사업에 적극 후원하지 않고 서는 결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일을 한다고 가정이나 남편에게 소홀해서는 선교의 문은 바로 열리기가 힘들 것입니다. 5. 또 5절에 "저희 교회에게도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가는 곳 마다 가정교회를 세웠습니다. 즉 5일간은 일하고 안식일에는 회당에 나가 예배드리고 주일에는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의 선교 사업은 가정에서부터 출발을 한 것입니다. 그들의 공장에서 직공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가정이 교회요 교회가 가정이었습니다. 7 끝으로, 낭만적인 스토리를 하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사도행전 끝절에, 사도 바울이 로마의 옥중생활을 하면서 자기 셋집에서 2 년동안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행28:30-31). 그런데 그 셋돈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어떤 학자는 본래 바울이 가지고 있던 돈이 있었다 하고, 또 어떤 학자는 빌립보 교회가 도왔을 것이라(빌4:18)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제 생각에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도움이 컸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장막업을 하는 사람이라, 열심히 벌어서 꾸준히 선교의 뒷받침을 해 왔던 사람입니다. 장막업이란 짐승의 가죽을 다루는 직업이라 그 사회에서 별로 좋은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천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열심히 해서 선교 사업에 뒷바라지를 했던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이 있듯이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바울 선교의 동역자가 되어 험하고 천한 일을 해가면서 선교의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지금 로마의 아벤틴(Aventine)이라는 거리에는 성 브리스가의 기념교회가 있고 그의 묘가 거기 있어 뜻있는 순례자들에게 아름답고 숭고한 감화를 남겨 주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의 말씀>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아..너희도 이 같이 주안에 서라. (빌4:1),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그 외의 나의 동역자들을 두유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4:1...3) 샬롬! 201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