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따라가는 길 - 고난주간의 명상 -
이 주간은 사순절 마지막 주간이며, 주님의 고난주간입니다. 우리가 주간을 어떻게 보내며 어떻게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 갈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첫째는 '자기 부인'이요 둘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1. 자기 부인'이란 무엇인가? 이 말씀의 뜻을 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 말씀의 전후 문맥을 잘 읽어봐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 이하를 읽어보면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실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실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말렸습니다.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베드로를 꾸짖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여기서 보는대로 '자기 부인'이란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이 뜻을 이루는데 장애물이 되는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뜻을 부인하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기도 생활에 있어서 강조하신 것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하신 말씀이고, 우리가 늘 암송하는 주기도문에서도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라고 기도하라 하셨고, 또한 주님 자신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그렇게 기도하셨지요.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는 일'이란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먼저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뜻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2. 자기 십자가란 무엇인가? 십자가는 당대의 로마의 사형 도구로써 죄수는 자기가 달릴 십자가를 자기 자신이 형장까지 지고 가야 했습니다. 유대인 사가 요세퍼스에 의하면, 로마 통치에 반대하는 유대 반란군들이 대량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일이 전에도 여러 번 있었고, 무엇보다 갈릴리를 중심한 유다의 반란(행 5:37) 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고 합니다(Jos, Antiq. XVII, 10:10). 그렇기 때문에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은 '자기의 십자가'란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를 위하여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그와 같은 고난도 달게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1. 유다 반란군의 십자가 2. 예수님 곁에 매달린 강도의 십자가 3.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진 십자가 4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4. 베드로가 거꾸로 매달린 십자가 5. 장신구로 달고 다니는 십자가 6. 교회 종탑이나 강대에 세워진 상징적인 십자가 7.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기 십자가' 이 중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는 3 번과 7 번인줄 압니다. 이 십자가는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때에 잘 참는 일이라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2:20,21)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고 했습니다. 고난주간입니다. 구레네 시몬이 억지로 지고간 십자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마가복음 15장 21절에 구레네 시몬이라는 사람이 주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대신 지고 갔다는 이야기 나옵니다. 요세프스에 의하면, 시몬은 아프리카 리비아 서북편 구레네에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에 속한 사람인데 그가 유월절 행사에 참예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다가 그 끔찍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Jos.,Antiq., XIV.7,2;Cont.Apion., 제 2권). 이때에 시몬은 자기 자신도 십자가에 죽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가 바로 자기가 기다리던 메시야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 그 감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베드로도 요한도 야고보도 그 어는 제자도 지지 못한 십자가를 잠시나마 자신이 대신 지고 예수님의 고통을 덜어드릴 수 있었던 그 감격은 그는 물론 그 가정을 구원하는, 그리고 그의 복음을 전파하는 동기와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15장 21절에 보면, 시몬의 아들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알랙산더와 루포입니다. 이것을 보면, 마가복음이 록되던 50년대에 이미 시몬의 가자식들이 교회에서 인정받는 큰 일꾼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또 로마서 16장 13절에 보면, 사도 바울과 구레네 시몬의 가정이 밀접한 교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내 어머니니라." 여기 루포라는 이름은 마가복음 15장 21절에 나오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 이름과 같은 이름이고(Harrison, Meyer), 루포를 '택하심을 입은 자'(ton eklekton)라고 한 것은 그가 교회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 보다 뛰어나게 봉사하고 충성했다는 뜻입니다(Meyer,Murray).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한 것은 바울이 한때 그녀의 모성어린 돌봄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것을 암시하며(Murray), 바울이 수리아 안디옥에 머물러 있을 때의 루포의 어머니가 바울을 극진히 보살펴준 일을 상기한 것이라고 합니다(행13:1-3 ; Harrison). 어떤 이는 바울이 회심 후 가족을 떠나 잠시 루포의 집에 유숙하는 동안 루포의 어머니가 그를 친아들처럼 사랑으로 잘 돌보아주었던 것이라고 합니다(Godet, Moule). 이렇게 그레네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것은 후에 큰 축복이 되었던 것입니다. 고난주간입니다. 우리도 고난에 동참하십시다. 구레네 시몬과 같이 내가 원치 않았더라도 주어진 십자가를 감수하면 신앙생활 가운데, 큰 변화가 일어나고 큰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찬송가 365장 1, 2절 내 주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질까 뉘게다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라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 찬송가 해설에 보면, "시몬" 대신 "내 주"로 대치되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시몬만 십자가를 지고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십자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를 거부하지 말고, 용기있게 지고 가자는 다짐의 찬송가 입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 Sweet after bitter. No gains without pains. "오늘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롬8:18). 희생 없는 기독교, 희생 없는 신앙생할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해가 될 것입니다. 힘들어도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잘 감당하십시다. 그리하면 반듯이 우리 앞에 영광의 그 날이 밝아 올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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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12년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