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용서에 관하여" - 사순절의 명상(5) -


 
여러분, 안녕하하세요?

사순절 다섯번 째 주간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용서"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저 합니다..

우라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남긴 일곱마디 말씀을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합니다.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2.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 23:43)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27)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5. 내가 목마르다 (요 19:28)
6. 다 이루었다 (요 19:30)
7.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여기 그 첫번째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원수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산산보훈에서  
가르치신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3-44).
  
여기서 우리가 깊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죽기 전에 반듯이 해결할 
일은
마음에 어떤 한을 품고 숨을 거두지 말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많은 악한 무리들이 당신을 괴롭히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지 않았습니까?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치가 떨리는
일이지요. 그러나 주님은 그  십자가의 고통속에서도 원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순절에 예수님의 용서를 배우고 실천하려고 힘써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한평생 암송하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주기도문이지요.   
그 중에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할 일 세 가지 중 하나가 바로
용서에 대한 것입니다.  그 허다한 기도의 제목들이 많겠지만,
매일 빼지 않고 기도해야 할 제목은 
(1) 일용할 양식과, 
(2) 용서와
(3) 악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 입니다(마6:11-13).

이 기도는 비록 짧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기도요, 
일평생 실천에 힘써야 할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기도를 입으로 암송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다른 어떤 기도인들 하나님께 바로 드릴 수 있겟습니까? 

주님의 기도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일용할 양식이나',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는 데 대해서는 다른 어떤 
설명이 없어도,  '용서'에 대해서는 별도로 설명을 더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용서가 기도생활에서 절대로 중요하다는 뜻이겟지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리라"(마6:14,1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기 위해서는 
우리도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느냐? 
보통 사람들은 한 세번 정도는 용서한다고 하지요.  세번까지는 용서하고
참다가 그다음에 또 그런 죄를 지으면, 다시는 용서하지 않는것이 통예로 
되어 있지요.

마태복음 18장 21절 이하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주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줄까요 일곱번까지 할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베드로가 
여기서 일곱번까지 라고 말한 것은 보통 사람들은 세번까지도 용서하지 
못하지만, 자기는 그 이상으로 일곱번까지는 할 수 있다고 자기를 내세우는 
태도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문자 그대로라면 칠칠이 49, 740번이라도 
용소하라는 것인데, 이 말의 참뜻은 몇번이라는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추호라도 원수 맺는 일은 하지 말라는 것 아니 겠습니가?
용서하고, 하고, 또 하고 한없이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으로 보면 보통 좀 착한 사람들은 두서너 번 까지  용서하면서
지내다가 그 다음에 그만 돌아서서 저주하고 원수맺고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가만 보면, 교회는 잘 다니면서도 교우간에  사로 헐뜯고 욕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오늘 뿐아니라, 초대교회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약4:1-12).

또 가정에서도 가만 보면, 그래요. 잘 지내다가고, 뭐가 속이 뒤틀리면, 
10년 아니, 20년, 30년 전의 일을 들먹거리면서 남의 속을 뒤집어 놓지요. 
그건 아직 진정으로 용서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왜요?  진정으로 용서했다면, 잊어버려야 하니까요..  

하나님은 일단 용서하면 잊어버린다고 했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시103:12).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씻어 버리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사43:25).


사랑하는 여러분,

나를 모해하고 괴롭히는 사람,
나를 죽이려고 칼을 갈고있는 사람,
꼴도 보기 싫은 사람,  
이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까?
용서하고 잊어버리는 사순절이 되십시다.
그리하여 두고 두고 나를 괴롭히는 이 악몽에서 깨어나
마음의 참 평안을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스데반의 용서의 기도는 사울을 변화시켰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죽이고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 현장에서
박수를 치던 사울이 스데반의 임종의 기도에 감동을 받은 것이 회개의 
동기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고 자니라"(행 7:59-8:3)

용서는 사랑의 이면이요, 사랑의 열매 입니다(고전13:5).
사랑합니까? 용서하십시오. 

스토익 학파의 성자였고 로마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레리우스 
Marcus Aurelius(121-180 AD)의 명상록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이른 아침 하루가 시작하기 전에 너는 네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오늘 너는 모든 종류의 불쾌한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그들이 너를 해치고 상하게 하고, 너를 욕할지라도, 너는 그와 같이 
살아서는 안된다. 너는 네 속에 하나님의 영이 깃들고 있는 사람이니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아침마다 우리도 하루가 시작하기 전에 이와 같은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라벤스부르크에 있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9만2천여명의 사람이 처형을 당할 때, 한 어린이의 시체에서 포장지에 
기록된 감동적인 기도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오 주님!
호의를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악의를 품은 사람들까지도 기억하여 주소서.

그들이 우리에게 끼친 고난만을 기억하지 마시고, 
그 고난으로 인하여 우리가 얻은 열매도 기억하여 주소서.

이 모든 고난의 결과로 맺어진 열매들; 
우리의 우정과 충성,
우리의 겸손과 용기,
우리의 관용과 넓은 마음도 기억하여 주소서.
 
그리고 그들이 심판을 받게 될 때에
우리가 맺은 모든 열매들로 인하여 
그들이 용서받게 하소서. 아멘!
(Richard J. Foster 저. "기도")

이와 같은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고, 
승리하는 사순절의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샬롬!
2012년 3월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