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과 성전정화

-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 -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말라기 선지자 이후 예수님이 오시기까지의 400여년 
간 하나님의 계시가 없었기 때문에 그 공백 기간을 신구약 중간시대(BC400-4)라고 
합니다. 이 중간 시대에 신약의 요한복음 10장22절에 꼭 한번 나타나는 "수전절 
修殿節"이라는 절기가 있습니다. 그 유래를 외경 성경 마카비서에서 보면. 
주전168년 수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가 유다를 침략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하고 
성전에 제우스의 신상을  세우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돼지피를 
제단에 드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안식일과 할례를 금했고,  이를 어길시에는 
극형에 처했습니다. 즉 헬라 사람들은 헬레니즘을 세계화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율법과 신앙을 말살하고자 하는 정책을 썼던 것입니다.(마카비 상 1:41-64).
 
이러한 상황에서 주전 167년 유다의 작은 한 마을 모데인에서 저항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경건한 제사장 가문의 자손인 마따디아라는 사람이(마카비 상2:1) 
구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의 명령을 거절하고, 그의 아들들과 동조자들과 함께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각오하고 투쟁에 나섰습니다.
그 때에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유다 전역에서  독립운동으로 확대되었고,
그 와중에 마따디아가 죽고, 그의 다섯 아들 중  '유다 마카비'가 후계자가 되어
마침내 주전 164년에 전쟁에 승리하여 잃었던 성전을 되찾고, 그간에 더러워진 
성전을 정화하여 하나님께 봉헌하였습니다. 그후 유대인들은 이일을 기념하여 
8일간의 절기를 지켰는데 이를 그들의 말로 하누카라 하고 우리말로는  수전절이
라고 합니다(마카비 상 4:36-61). 참으로 중간사에 있어서 기록에 남은 위대한 
업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월이 흘러서, 예수님 시대에 와서 그 순교의 피로 정화된
주님의 성전이 세속의 정권과 야합한 거짓 종교 지도자들로 인하여 다시 
더럽혀졌습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예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을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2:13-17)고 하셨습니다. 우리 나라 속담처럼, 저들에게는 '제사에는 
마음이 없고, 젯밥에만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2-23절에도 보면,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매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다"고 했습니다.
 왜 가셨을까요?  예수님도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수전절을 기념하기 위해서 
올라 가셨을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요한 복음 2장에서,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행위를 책망하신 사건에 비추어 보면, 예수님께서 
수전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도 수전절을 기념하는 차원이 아니라.
종교적 축제를 이용한 그들의 그릇된 행위를 책망하고 회개시키기 위한 
것이었던 것이 본문에 나타난 유대이들과의 논쟁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왜 이 사순절에 수전절 이야기를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이 시기에 우리 마음 성전을 정화하는 일에 힘쓰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귀한 손님을 초대할 때에는 맛있는 음식도 장만하지만, 그보다 앞서 
 집안 대청소를 하지 않습니까? 집안 구석 구석의 먼지와 때를 털고 닦고 광을 
내듯이, 사순절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 마음 성전으로 영접하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청소하는 일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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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 전서 3장16절에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골로새서 3장 5절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럼으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3:5)고.  그러면 탐심의 대상이 무엇이냐? 
예수님은 그것은 물질이라 햇습니다. 곧 '소유의 넉넉함'입니다.(마12:15절).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산상보훈에 보면 더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고 했습니다. 
물질은 이 세상에서,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불의한 물질을 탐하거나 욕심을 부리는 것은
이방인의 삶의 방법이요, 그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우상숭배와 같은 것이지요. 
하나님의 백성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이 거하실 우리 마음 성전에 우상이 자리잡고 있도록 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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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이나 라디로의 보도를 보면,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지수가 높고 경제적으로 상위에 있는 우리나라 나라 사람들의 
자살률이 가장 높은데 왜 그렇겠습니까? 특히 기독교 왕국이라고 한는 
한국에서 말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물질이라는 우상을 
섬기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교회의 책임이 너무
크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석학 프란시스 베이컨이 참된 지식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네 가지 우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1. 종족(種族)의 우상:생물학적 입장에서 생물에 대한 편견 특히 인간이나 
   인종에 대한 편견을 말합니다.  백인 우월주의 같은 것. 
   유태인의 선민 사상 같은 것. 다 진리를 막는 우상이지요. 
   
   2. 동굴(洞窟)의 우상:철학적 입장에서 독선과 아집 같은 것, 이 동굴의 우상은
   플라톤의 '이상의 나라'라는 그의 대화록에서 말하는 것인데, 날때부터 
동굴에서 태어난 죄인이 밖앗 세상을 전혀 모르면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 즉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그런 사고방식이 우상이라는 것이지요.  
3. 시장(市場)의 우상: 경제적 입장에서 황금만능 주의, 인생의 전부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 

4. 극장(劇場)의 우상: 요즘 말로, 인끼있는 연예인들이 신처럼 보는 것 등이지요.
그러나 연예인 자신속에 절망과 거짓은 전혀 모르는 그런 어리석음이 
극장이 우상이지요.

우리에게는 이런 우상들이 없는지요?

저는 여기에 한가지 더 추가한다면, 그것은 종교의 우상이라 봅니다.   
어떤 종파의 교리를 절대시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와 동일시하거나
특정 종파의 교주를 하나님처럼 신격화하는 그런 우상승배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열매를 봐서 그 나무를 안다'고 
하셨으니(마7:16),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스스로 
살피고, 우리 마음 성전에 어떤 우상이 들어 있는지 잘 살펴서 이번 사순절 
기간에 깨끗이 청소해 버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이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 성전에 충만하도록 함께 기도에 힘쓰십시다.  


샬롬. 
2012년 3월11일
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