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기원(4) - 날마다 새롭게 하소서 -
사랑하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입니다. 뉴스를 들으니까, 한국에는 설날 연휴를 맞이해서 고향을 찾는 귀성객으로 모든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산업사회를 맞이하여 고유의 미풍양속이 살아져가는 이 때에 설날을 맞아 고향을 찾아가 부모 형제, 친족과 재회하고 가정제례를 이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자라나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 설날은 정말 좋은 날이었습니다. 너 나할 것 없이 배부르게 먹지 못하던 그 시절에 설날 하루만은 배가 호강을 하는 날이었지요. 일밖에 모르는 머슴들과 여종들도 그 날만은 푹 쉬면서 즐기는 날이었지요. 용돈이라는 것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던 시절에 세뱃돈으로 알사탕도 사 먹었구요. 참으로 아름다운 동심의 설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실버시대에 접어드니 설날이 반갑지 않고 오히려 슬퍼지기도 합니다. 왜냐구요? 나이가 한 살 더 먹는게 싫으니까요.. 조선시대의 인문지리서라고하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보면, '설'의 어원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주목을 끄는 것은 1. '몸을 삼간다'는 신일(愼日)의 뜻이 있고 2. 새해가 시작되어 '섧다','슬프다'는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설을 쇠고 나이 한살 더해지면, 어린 것들은 어른이 되어간다고 기뻐하지만, 나이 지긋한 노인들은 반대로 슬퍼지지요. 그러나 설날이 지니고 있는 더 깊은 뜻은 해가 바뀜과 함께 몸과 마음을 삼가하여 새 출발한다는 데 무개를 두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옛날 바벨론은 신년이 되면 바벨론의 주신 마루둑(창조의 신)의 제사장의 주관하에 약 열흘간 신년의식이 진행되는데, 5일째 되는 날에는 왕도 참석하는데 왕은 손을 정결히 씻고 신전으로 가면, 제사장은 비하의 상징으로 왕의 몸에서 권위의 상징을 모두 떼어버립니다. 이는 왕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고, 무릎을 꿇고 그의 실패를 고백하게 하고, 왕의 따귀를 때리고 눈물을 흘리게 한 후에 비로소 그에게 왕으로서의 지위를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이 설날을 신일(愼日:신(愼)=삼가할 신)로 본 것은 새해를 맞으면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출발한다는 거룩한 의지가 담겨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고려말의 유학작 우탁(禹倬 1263-1342)의 유명한 '탄로가 歎老歌'가 있습니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싀(침 돋친 나무) 쥐고 늙는 길 가싀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치려했더니) 백발이 제 몬저(먼저) 알고 지럼길(샛길)로 오더라 해설에 보면, 이 '탄로가’는 우탁이 충선왕의 패륜을 간하다가 진노를 입어 예안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며, 새로 들어온 주자학을 연구하다 보니 어느덧 백발이 되어 인생의 늙음을 안타까워하여 읊은 시라고 합니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새해를 맞이한 실비(노인)가 된 우리 자신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늙음의 슬픔을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겠니까? 우탁의 '탄로가'에는 아무 대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답이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워지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4:16-18). (1)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 여기서 '겉사람'은 죽어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제한된 육체를 가리키지만, '속사람'은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영적 실존을 가리킵니다(5:17;엡 2:5;골 3:9, 10;벧전 1:3), '겉사람'이 낡아져가는 것은 인간들에게 적용되는 생성 소멸의 원리이지만, '속사람'이 도리어 새로워지는 것은 중생한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식이 새로워지며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엡 4:15;골 3:10). 이 '새로워짐'은 종말론적 재림의 때에 완성되는 것이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인해 이미 현재화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날마다 새롭도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편 본문은 바울 자신에게 있어서 그의 육체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고난들 (1:7-9;4:8-11)과 세월의 흐름으로 하여 점점 쇠약해지고 있지만 그의 영적 실존은 나날이 새로워진다는 고백입니다. 솔로몬 왕이 이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를 누린 후에 고백한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되며, 해 아래 새 것이 없다고 탄식했지만(전1:1-9) 믿음의 사람 바울은 비록 괴로운 삶속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새롭다'고 했습니다. 헬라 말에 새로운 것에 대한 두 가지 표현이 있는데.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을 '네오스 neos'라 했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카이노스 kainos' 라 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 할 때의 '새로움'은 모두가 시간과 함께 낡아지는 그런 존재가 아니고, 질적으로 새로워지는 차원의 새로움 입니다. 이제 새해를 맞이해서 연로하신 여러 어르신네들, 우리의 겉사람은 날마다 낡아지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새 힘을 얻으십시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40:30, 31). 새해에 더욱 새힘 얻으시기 바랍니다. 아래는 익명의 한 네티즌이 쓴 '새해의 간절한 소망'이란 글의 일부 입니다. 새해의 우리의 기원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 드립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 마디해야 한다고 나서는 고약한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주위 사람의 삶을 바로잡아 보고자 하는 헛된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지 못하고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지난 장년기 처럼 활기차고 여유로우며 유머를 갖게 하소서.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없는 곳에서 남의 이야기를 하는 어리석은 버릇을 거두어주소서. 제가 가진 보잘 것 없는 지혜의 창고를 과장해서 오만하지 않도록 하시고 저에게도 친구가 몇명은 남아 있도록 도와 주소서. 끝 없이 이얘기 저얘기에 끼어들어 횡설수설하지 않도록 하시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달어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것들에 대하여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내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예기를 기꺼이 들어줄 수 있는 아량과 인내심을 갖고 경청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 주십사고 염치없이 청하기는 어렵사오나 제게 겸손한 마음을 주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게 하소서. 나도 자주 틀릴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고 온화한 사람이 되게 해 주소서 저는 현자까지 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싶지는 않사옵니다 제가 눈이 점점 침침해지고 귀가 잘 안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듣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행위를 빨리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선뜻 칭찬해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저로 하여금 곱게 늙기를 힘쓰는 늙은이가 되게 하시고 지금까지 저에게 배풀어주신 넘치는 감사와 사랑을 이 나라와 겨레와 내 주변에게 몇 배로 돌려주고 기꺼이 소천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젊은이나 어린이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고 사랑을 받는 그런 늙은이로 나머지 삶을 살아가게 편달하여 주소서. - 아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오늘의 말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

샬롬!
2012년1월23일
설날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