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희망 - 독재자 카다피의 종말을 보면서 -
지난 20일, 쿠데타로 집권한 후, 42년간 권세와 영화를 누리던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종말을 고했다. 인간의 기본 자유를 박탈하고 정의에 역행하는 통치자는 언젠가는 반듯이 심판을 받게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한번 확실히 보는듯 하다.
만델라의 '아즈위 Azwie 희망' 넬슨 만델라, 그는 D급 죄수였다. 최악의 정치범인 D급 죄수의 면회는 6개월에 한 번, 편지도 한 통밖에 허용되지 않았다. 시계라는 건 있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었으며 갈수록 죄책감만 늘어갔다. 간수는 일부러 그에 관한 신문기사를 오려 그가 보도록 했다. 그를 더욱 괴롭히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차라리 자살이라도 하겠지 여기며. 독방에 갇힌 지 4년째 되던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듬해에는 큰아들마저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그는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조차 없었다. 가족 역시 14년째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내와 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집에서 쫓겨나, 고립된 흑인 거주 지역으로 끌려갔다. 둘째 딸은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냥 내버려두라는 하소연뿐이었다. 누군가 자신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고 느낄 때 삶은 절망 그 자체다. 이 끔찍한 무력감 앞에서 그는 아직도 더 견뎌야 하는 것인지, 얼마나 더 이대로 견뎌야 하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14년 동안이나 보지 못한 맏딸이 자식을 낳았다고 찾아왔다. 면회가 고통스러울 법했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아버지, 그때 편지로 말씀드린 제 딸의 이름은 정하셨나요?' 그들에게는 할아버지가 손자의 이름을 지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맏딸은 그 무수한 고난의 시간을 견뎌 어른으로 성장했고 결혼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딸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아버지를 찾아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쪽지를 내밀었다. 딸은 그 쪽지를 조심스럽게 펼쳐서 보고는 종이에 얼굴을 묻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겨우 참아냈다. 종이에 묻은 잉크가 눈물로 얼룩지고 있었다. 거기에 적혀 있는 글자는 다음과 같았다. '아즈위(Azwie, 희망).' - 출처=인터넷 - 넬슨 만델라는 흑인인권옹호를 위해 변호하다가 투옥되어(1956) 27년간 옥고를 치루고, 석방된 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1993), 이듬해 남아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1994) 이는 전혀 그가 정의는 승리한다는 신념과 희망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 신념과 희망을 가지고 남북통일을 위해서 꾸준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희 망 (希 望)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틔우며.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 속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 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 길 멈추지 말라. 인생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 시인 : 문 병 란- 샬롬! 2011/10/23 주일아침 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