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의 더 나은 제사(히11:4) -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의 장’이라고 한다. 여기서 믿음이 무엇이며, 신앙생활의 원리가 무엇임을 배우게 된다. 신앙생활을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이 있다. 하나는 믿음이요(창15:6;롬1:16, 갈3:11, 히 10:38), 둘째는 예배이다(히11:4). 본절에서 우리는 그것을 볼 수 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 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1. 아벨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다. 아벨의 믿음은 어디서 왔는가? 아벨의 믿음은 무인도에서 태어나서, 혼자 믿는 그런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서 전해온 믿음이다. 아담으로부터 전수 받은 믿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이다. 에덴동산은 인류 최초의 교회다. 거기에 하나님이 계셨고, 사람이 있었고, 말씀이 있었고, 죄지은 후에 희생 제사가 있었다.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인류 최초의 범죄 사건과 거기서부터 어떻게 구원받은 사실을 자식들에게 분명히 전해 주었을 것이다. 아담과 그 아내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이 두려워 낯을 피하여 나무 사이에 숨어있을 때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그들의 죄를 물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벌거벗은 몸을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창 3:9, 21) 이것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첫 기록이다. 그런데 이 '가죽옷’이 무엇이냐? 호랑이 가죽이냐, 개가죽이냐? 아니다. 성경전체의 맥락으로 볼 때에 가죽옷’은 인류의 죄를 위하여 대속의 제물이 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예표이다. 아벨은 아담으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 들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아벨의 믿음은 말씀에 근거한 믿음이다. 2. 하나님으로 부터 의롭다 함을 받은 아벨의 제물은 어떤 제물인가? 그 해답을 창세기 4장에서 찾을 수 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의 맏배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랍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랍하지 아니하셨다.“(창4:3-5) 그 이유가 무엇인가? 잠언 3장 9절에 보면,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고 했다. 곡물로 제물을 삼을 때에는 분명히 "처음 익은 열매"로 드려야 했는데, 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벨의 제물은 양의 첫 새끼와 살진 것을 골라서 제물로 드린 반면에 가인은 소산물의 처음 익은 것이 아니었다는데 문제가 있다. 제물의 품종이 아니라, 제주의 마음가짐이 문제였다. 하나님의 눈은 사람이 제물을 드릴 때에, 제물에 먼저 눈길이 것이 아니라,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마음에 먼저 눈길이 가신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벨과 그 제물은 열랍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랍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여기 '열랍’이란 히브리 말은 솨야(shaah)인데, ‘응시하다,’'지켜보다.’의 뜻이다. 하나님은 제물보다 그 사람의 마음을 먼저 보신다는 말이다. 가인의 제사는 히브리서에 의하면 '믿음'이 없었고, 창세기에 의하면, '정성'도 없었다. 반면에 아벨의 제사는 믿음도 있었고, 정성도 있었다는 말이다. 주전 8세기에 유다/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를 누릴 때에 하나님의 전에 제물(祭物)이 차고 넘첬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역겨워 하셧다.(사1:13). 왜냐? 그 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의 손에 피가 가득 묻어있었기 때문이다(사1:15). 불의를 행하고 부정으로 얻은 물질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이다(사 1:10-11; 미 6:6-16). 또한 가인에게 결정적인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반항이었다. 자기의 제사가 실패했을 때에 부족을 깨닫지 않고, 개선할 마음이 없이, 오히려 화를 내고 동생을 시기하고 분해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발동하였다. 그러다가 기회를 타서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어 가인을 부르셨다.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이 때가 가인이 회개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그는 반항하였다.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4:9).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가인은 아벨을 시기하고 미워했을 것이다. 아벨은 부모에게 받은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잘 했고, 가인은 그전부터 부모에게 불순종하여 반항하는 생활을 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제물을 받지 않는다고 당장 동생을 살해할 수 있겠는가. 평소에도 가인은 동생을 미워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셨다. “그럼으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기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이와 같이 형제와 화목하지 못하고 악한 마음을 품고 예물을 드리면 그것이 바로 제사에 실패하는 가인의 제사가 되는 것이다. 3. 우리의 더 나은 제사는 어떤 것인가? (1) 히브리 기자의 권면, '더 나은 제사’? 영문으로 보면, 'A More Excellent Sacrifice'이다. 'A More'란 비교급이다. "좀 더"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더욱 힘써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최선을 다 해도 늘 부족할 뿐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장을 끝내면서 결론적으로 12장 초두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고 했다. 우리가 더욱 힘쓰고 최선을 다 해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으면, 우리의 최선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를 바라보면서 계속 우리의 믿음의 경주장에서 달음질해야 할 것이다. (2) 바울의 권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영적 예배’니라. 짐승이나 잡다 드리는 것, 돈이나 얼마 바치는 것, 그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드리라는 것이다. 여기 '영적 예배(Spiritual Worship = RSV)'를, 흠정역 (KJV)에서는 'Reasonable Service'라고 했다. 예배(Worship)와 봉사(Service)는 동의어이다. 하나님을 바로 예배하는(Worship) 사람은 세상에 나아가 봉사(Service)도 바로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간디가 사회의 7대 악을 말했다. 그 중에 봉사할 줄 모르는 종교는 사회악이라고 했다. 1) 원칙 없는 정치 2) 노동 없는 부 3) 양심 없는 쾌락 4) 인격 없는 지식 5) 도덕성 없는 상업 6) 인간성 없는 과학 7) 희생 없는 종교(Worship without Sacrifice) 우리는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할 뿐 아니라. 세상에 나가서 6일 동안 예배할 줄 알아야 한다. 봉사하는 정신으로 사는 것이 곧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삶이라고 본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우리의 더 나은 제사의 길이라고 본다. 지난 해 가정의 달에 KBS가 8000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효도하는 길이 어떤 것인가를 설문조사를 했는데. 제 1 위가 자식들이 부모를 자주 만나주는 것이요, 제 2 위가 형제간에 화목하게 지내는 것 제 3 위가 사회에서 존경받고 욕먹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제 4 위가 생활비를 넉넉히 드리는 것, 제 5 위가 자식들과 함께 사는 것 등이다. 이것을 신앙생활에 적용하면 하나님께 효도하는 길이 될 것이다. 1. 주일날 예배에 참석해서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다. 목사가 정성드려 준비한 설교 말씀을 그 주일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서 두 번 다시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노치지 말고 잘 듣는 것이 하나님께 효도하는 길이 될 것이다. 2. 교인 간에 화목하는 것이다. 가인과 같이 동생을 미워하면 제사에 실패한다. 3. 세상에 나가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이다. 그것이 진정한 예배자의 신앙생활이다. 4. 정직하게 열심히 일해서 얻은 수입 중에서 하나님께 넉넉하게 드리면, 교회는 그 귀한 물질로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며,구제하며, 선교사업에 기쁘게 사용하게 된다. 5.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 이것은 사실 미가 선지자가 이야기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니다. (미6:8) (1) 공의를 행하고, (2) 인자(仁慈)를 사랑하고, (3)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다.(미6:8) 하나님은 성전 안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이 죄악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함께 계시고 우리를 지켜보신다(shaah)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의 말씀>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히11:4) 샬롬 2011년 8월 24일, 삼일기도회 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