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흉악범의 아내" - 한 전도인의 체험 수기 -
이것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전도자가 절망에 처한 한 가정을 구원한 체험 수기입니다. "부부란 즐거울 때보다 힘들고 고통이 따를 때 서로 의지하고 불행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는 말로 시작하는 전도인의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끝까지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내가 아프기 전에 전국 36개의 교도소와 감호소(監護所) 유치장을 순회하면서 주의 복음을 증거할 때에 겪었던 안타까운 사연을 다시 한번 회상해 본다. 어느날 지방의 한 교도소에서 전화가 왔다. 재소자 한사람이 죽으려고 석 달째 단식을 한다고 한다. 죽고 싶어도 죽어지지 않는 곳이 교도소 이기도하다. 어쩔 수 없어 호스를 목에 넣어 강제로 급식을 한다는 것이다. 온몸을 포승줄로 꽁꽁 묶어놓고 어둡고 좁은 독방에 특별수용중이라 한다. 언제까지 그럴 수 없어 나한데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다음날 나는 교도소에 가서 그를 만났다. 대기실에서 그의 사건내용, 가족관계, 형기등, 신상에 대해 미리 듣고 한동안 기도를 드리고 상담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건 사람인가, 짐승인가? 흐트러진 긴 머리. 얼굴은 해골만 남았고 손톱은 갈퀴 같았다. 이건 완전히 산송장이다. 포승줄을 풀어주니 벽에 머리를 박고 의자를 자신의 머리에 마구 때린다. 피가 흐르고 상담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서둘러 제압하고 다시 포승하고 수갑을 채웠다. 상담이 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상담실을 나와 담당교도관에게 자세한 내용을 들었다. 직업은 트럭기사. 수 차례의 성폭력. 살인.... 1심에서 사형선고. 항소심에서 20년 유기징역을 선고받아 8년째 수용 중이다. 아내와 자녀가 4명. 그것도 막내둥이는 쌍둥이다. 아내는 어린 자녀와 함께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고, 결국 삭월세 보증금으로 포장마차 일을 하다가 그것도 실패. 일수돈 300만원을 못 갚아 다방으로 선불 받고 전전긍긍하는데 중학생인 딸이 면회 와서 그 사실을 아버지에게 말했는데, 그 후로부터 단식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나는 모든 내용을 듣고 교도소를 나왔다. 답답하고 마음이 울적하였다. 다음날 나는 그의 자녀들이 살고있는 집을 어렵게 찾아갔다. 녹슨 컨테이너에 4명의 자녀가 살고 있는데, 그 흔한 텔레비전도 없다. 주머니를 다 털어 우선 얼마의 쌀과 부식을 사주고 큰 딸에게 엄마의 직장을 물었다. 충북 영동에서도 한참 들어가니 조그마한 마을이 보였다. 허술한 다방. 얼마나 기다렸을까...짙은 화장에 짧은 치마를 입은 중년의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가 주인의 말을 듣고 내 앞에 앉았다. 술냄새, 그 리고 야윈 얼굴……. 나는 대충 인사와 소개를 하고 밖으로 함께 나왔다. 그녀는 식당에서도 식사는 안하고 계속 술만 마신다. 나는 남편의 소식을 자세히 전해주었다.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목사님. 딸아이한테 전화로 들었어요. 쌀도 사주셨다고.. 그리고 아이아빠한데 전해주세요. 나는 비록 이런데서 일하지만 몸과 마음은 깨끗하다고…. 이런 고생이 아이들과 옥살이하는 아이 아빠를 위해서예요. 그래도 전 외롭지 않아요.남편이 있고 자식들이 있는데요. 죽긴 왜 죽어요? 그럼 우리는 뭐에요? 그 사람이 살고 있다는 자체가 저와 우리 아이들에겐 미래이고 소망인데요.. 남편이 없다면 전 이런 고생은 안 해요. 그래도 남편이 보고 싶으면 면회를 가서 얼마든지 볼 수 있잖아요? 가서 전해주세요. 우리 가족은 모두 잘있다고. 그리고 이 말도 꼭 전해주세요. 저는 00 아빠만을 사랑한다고. 그 여인의 얼굴엔 눈물줄기로 화장이 엉망이 되었다. 나는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같아 보였다. 그렇다. 그 여인은 비록 시골의 티켓다방에서 고생을 하지만 그녀에겐 사랑이 있고, 가정이 있고, 소망이 있는 것이었다. 갇혀서 단식하는 그녀의 남편이 그렇게 미련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녀와의 두 시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용기와 위로의 말로 그녀에게 권면도 해주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 그녀에게 티켓비을 주었다. 그녀가 남편에게 전해 달라는 가족사진을 가지고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벌써 어두움이 짙어진다. 헤어져 마을 입구를 나설 때까지 백밀러 속엔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았다. 눈시울을 적시며 나는 시골길을 달렸다. 나는 운전하면서 기도했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 여인과 아이들을…….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는 주님. 종이 행해야 할 일들을 시행하시옵소서 종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나이다. 종은 주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종을 통하여 그의 가정을 구원하옵시고 주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으로 그의 가정에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다음날 내가 졸업한 신대원의 학장님을 찾아갔다. 모든 내용을 들은 학장님께서 함께 기도하자고 하시며 연락을 주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다시금 교도소를 찾아갔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다. 여전히 포승줄에 묶여 끌려오다시피 상담실로 들어왔다. 나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그에게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다. 흐릿한 눈빛이 갑자기 밝아진다. 그리고 한참을 사진을 주시하다가 내 얼굴을 본다. 그도 역시 그의 아내처럼 눈물을 흘린다. 나는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그리고 조그마한 목소리로 그의 귀에 대고 말했다. "00 엄마 만나고 왔습니다.아이들도……. 그가 갑자기 고개를 들며 나의 얼굴을 마주하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입니까? 그게 사실인가요?.." "네. 만나서 식사도하고 그리고 아이들도 모두 잘있습니다. 막내인 쌍둥이가 아주 잘생겼더군요." "목사님.감사합니다.이 포승줄 좀 풀어줄 수 없겠습니까?" 나는 입회교도관에게 부탁했다. 지난번의 소동으로 교도관은 망설이는 듯했다. 그가 교도관에게 "괜찮아요. 이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좀 풀어주세요" 라고 말하자 교도관은 안심하는 듯 포승줄을 풀어주었다. 나는 교도관에게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말하자 입회교도관은 상담실 밖에서 지켜보겠다며 문을 나섰다. 나는 탁자 위에 물을 한컵 부어서 그에게 내밀었다. 물 한컵을 천천히 다 마신다. "목사님. 솔직이 말해주세요. 제 아내가 다방에서 일하나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그 다방에서 차도 마시고 아주머니도 만났습니다." 나는 있었던 일들을 모두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전해 달라는 말도 그대로 전해주었다. "목사님 저 같은 놈을 정말 사랑한다고 합디까?" "네. 그렇게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가 수심에 가득찬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사실 저는 사형당해야 마땅한 놈인데 이렇게 죽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 아내와 아이들이 살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아닙니다. 아주머니는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미래이고 소망이라'고 말씀하시던데요. 그리고 아빠가 살아있기에 외롭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사진을 다시 보던 그가 나에게 말했다. "목사님.감사합니다. 죽지 않을랍니다. 살겠습니다. 살아야지요. "네.그래야지요. 00엄마하고 아이들이 있잖습니까?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 가정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그는 내 무릎에 얼굴을 묻고. 묵묵히 울기만 한다. 나는 교도관에게 죽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힘들게 죽을 먹는 그를 지켜보다가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주님께 기도를 드렸다. "주님. 감사합니다. 여기 주님의 잃은 양이 있습니다. 고통의 몸부림으로 찢겨진 마음으로 이제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옵시고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와 헤어져 교도소문을 나섰다. 나는 한없는 감사를 주님께 올렸다. 며칠 후.학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음 주일밤 서울의 00교회 헌신예배를 부탁했다. 그날. 저녁예배인데도 수백 명이 넘었다. 교회 목사님이 내 소개를 하면서 학장님에게 전해들은 그의 가족에 대한 내용을 성도들에게 알려주시는 게 아닌가. 나는 설교가운데 주님의 놀라운 역사와 아름다운 여인의 삶을 전했다. 예배를 마치고 단을 내려왔는데 여기저기서 돕겠다고 나에게 모여들었다. 그날의 사례와 후원금은 너무 풍성했다. 채워주시는 주님의 풍요를 다시금 확증하고 집으로 돌아와 밤을 새우며 기도했다. 다음날 충북 영동의 그 다방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모든 일을 자세히 설명하고 후원금을 전해주었다. 내일 면회를 가겠다고 한다. 나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한다, "아닙니다. 주님께 감사해야지요. 이렇게 된 것은 제가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00네 가정을 너무 사랑해서 입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예수님에 대한 메세지를 전해주었다. 그녀는 학생시절에 교회에 다녔다고 했다. 얼마 후 전화가 왔다. 면회도하고 방을 얻었다는 것이다. 추운 날씨에 컨테이너에서 아이들이 겨울을 보낸다는 것이 무척 걱정되었다 고한다. 주님 주신 후원금이 그렇듯 한 가정을 따뜻하게 해주신 것이다. 그의 가정은 모두 교회에 나가고 있다. 남편은 교도소에서 성경암송대회에 참여하기도하고 그 여인은 식당에서 일하며 교회에 봉사도 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 내가 병원에 있을 때 중학생이던 딸이 결혼을 했다. 그날 신부는 아빠대신 내 팔을 잡고 예식장에 입장했다. 지금까지 서울의 교회에서 그 가정에 매달 후원금을 보내준다. 몇 년 만 지나면 20년의 형기를 마치고 다시금 가정으로 돌아올 갇힌 그 형제에게, 그리고 그의 가정에 우리 주님의 은혜가 더욱 풍성하기를 기도한다. 그렇듯 우리 주님께선 사랑이 넘치신다. 고통의 밑바닥에서 죽음을 선택했던 갇힌 영혼을 주께서 다시 살려주신 것이다. 갇힌 영혼뿐 아니라 그의 가정까지 모두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 <오늘의 말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 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1, 32) 출처=인터넷 "어느 흉악범의 아내" 샬롬! 2011년 7월31일 주일아침 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