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 6.25 전쟁 61주년 -
  이 제목의 글은 작고하신 모윤숙(1910-1990) 시인이 육이오가 발발한 그 해 광주 어느 산곡을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한 국군을 만나, 그가 죽어가면서 못다한 이야기를 대변이라도 하듯 동족산잔의 애상(哀傷)을 후세에 전해주고 있다. 국방부 유해 발굴단 발표에 따르면, 6.25 때 전사/실종한 국군의 수가 15만 7천인데. 국립헌충원에 안장된 수는 2만7천에 불과하고 아직 13여만 먕의 호국영령들의 유해가 이름 모를 어느 산야에 묻혀 오늘도 가족의 따뜻한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육이오 61주년, 우리가 이렇게 자유 세계에서 편히 살고있는 것은 그 때에 그 전선에서 산화한 저 위대한 전사들의 죽음의 대가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감사하며, 이제 우리의 남은 생을 결코 헛되히 보내서는 않된다는 것을 굳게 다짐하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저 영령들의 영원한 명복을 다시 한번 간절히 기원한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 모윤숙-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이다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강한 대한의 혼이 소리쳐 나는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 위와 가시숲을 이순신같이, 나폴레온같이, 시이저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 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모스코바 크레믈린 탑까지 밀어 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날으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어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웠노라. 그러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 지어 넘어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 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 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짜기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시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날으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리 숨 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나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으는 봄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으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 다고.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 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아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 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시 오지 않으리라.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 떼가 강과 산을 넘는다. 내 사랑하는 형과 아우는 서백리아* 먼 길에 유랑을 떠난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 체 하려는가?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는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괴하라. 내 친구여! 그 억센 팔 다리. 그 붉은 단군의 피와 혼, 싸울 곳에 주저 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 일으켜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 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즐거이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모윤숙 시집 {풍랑}, 1951) 샬롬! 2011년 6월 25일 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