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 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면서-
미국의 남북전쟁 때(1862) 워싱턴시티 남쪽 레파하녹크 리버(Rappahannock river)전투는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의 하나로 양쪽 진영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면서 낮에는 전투, 밤에는 군인들의 사기를 위해서 양쪽 군악대는 매일 밤 음악회를 열었는데, 어느 날 밤 북군의 군악대가 '성조기의 노래'를 연주하자, 남군은 '딕시의 노래'(남군의 행진곡)로 대항하다가 북군의 밴드가 지금 듣고 있는 이 HOME, SWEET HOME을 연주하자 남군의 군악대도 같은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그 순간 남북 모든 군인들은 텐트 밖으로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장면을 현장에서 취재했던 기자 프랭크 막심은 한 마디로 이렇게 말했답니다. '다들 미쳤다.' 노래 하나 때문에 전쟁은 사라지고 오직 조국과 동포애만 남았던 것이지. 그로 인해 양쪽 군사들은 전쟁을 중단하고 24시간의 휴전을 약속하고 상대방이 적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강으로 뛰어나와 서로를 얼싸안고 환호했다는 것입니다. 이 노래는 영국의 작곡가 Bishop, Henry Rowley (1786-1855)가 1823년에 작곡한 오페라 '밀라노의 아가씨 클라리' 중의 한 가닥 선률인데, 미국의 극작가였던 John Howard Payne(1792-1852)이 가사를 붙혀서 온 세계인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는데, 그가 알제리에서 사망한지 31년만에 그의 시신이 그의 고향인 뉴욕으로 돌아올 때에 항구에는 미국의 대통령, 국무위원, 상원위원들과 수많은 국민들이 나와 모자를 벗고 조용한 그의 귀국을 환영하며 조의를 표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랫겠습니까? 그는 고향을 떠나 외국에 나가 살면서 고향과 고국을 사랑하며, 피를 같이한 부모형제가 있는 허름한 자신의 고향 집을 그리워하고, 구차해도 행복한 자기 집을 노래하며 수많은 희곡과 詩를 남기고,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노래를 작사하여 온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소중하다 할지라도 그 중의 가장 귀하고 소중하고 귀한 것은 바로 가정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않될 것입니다. <즐거운 나의 집>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 뿐이리 고요한 밤 달빛도 창 앞에 흐르면 내 푸른 꿈길도 내 잊지 못하리 저 맑은 바람아 가을이 어디뇨 벌레 우는 곳에 아기별 눈뜨네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 뿐이리 “Home, Sweet Home”(1823) (John Howard Payne 작사, Sir Henry Rowley Bishop 작곡) (1)'Mid pleasures and palaces though we may roam, Be it ever so humble, there's no place like home; A charm from the skies seems to hallow us there, Which, seek through the world, is ne'er met with elsewhere. Home! Home! sweet, sweet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There's no place like Home! 환락과 궁궐 가운데를 방랑할지라도 비록 초라하지만 나의 집같은 곳은 어디도 없네. 하늘나라 매력으로 우리를 유혹할지라도 세상 끝까지 찾아도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네. 집, 집, 즐겁고 즐거운 나의 집 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도 없네. 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도 없네. (2)I gaze on the moon as I tread the drear wild, And feel that my mother now thinks of her child; As she looks on that moon from our own cottage door, Thro' the woodbine whose fragrance shall cheer me no more.(chorus) 쓸쓸한 들판을 거닐면서 달을 쳐다볼 때 어머니도 이 자식 생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네. 어머니가 시골집 창문으로 달을 바라볼 때 피어있던 담쟁이덩굴 향기도 이제는 더이상 위로가 되지 못하네. 집, 집, 즐겁고 즐거운 나의 집 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네. 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네. (3) An exile from Home, splendour dazzles in vain; Oh, give me my lowly thatched cottage again! The birds singing gaily, that came at my call, Give me them, and the peace of mind, dearer than all!(chorus) 집 떠나 헛되이 현혹에 빠졌네 이제 다시 내 살던 초가집으로 돌아가리라 내가 부르면 새들이 날라와 즐겁게 노래하던 곳 모두 돌려주오. 무엇보다 소중한 마음의 평화를. 집, 집, 즐겁고 즐거운 나의 집 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도 없네. 나의 집 같은 곳은 어디도 없네. ---------------------------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소중하다 할지라도 그 중의 제일은 가정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행복하게 잘 살던 부부가 의견 충돌로 이혼하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모든 것을 공평하게 반씩 나누어 갖기로 했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찾아 반씩 나누었습니다. 땅도 반씩 나누었습니다. 집도 팔아서 반씩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녀가 11명인데, 서로 많은 자녀를 맡겠다고 주장했습니다. 도저히 타협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랍비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랍비가 대답했습니다. “하나 더 낳을 때까지 살아라.” 부부는 랍비의 말을 듣고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빨리 아이를 하나 더 낳아 우리 이혼하자!” 10개월 후에 그들은 드디어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부부는 하나님의 뜻을 해석했습니다. 이것은 “이혼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 후 이들은 계속해서 잘 살았다고 합니다. 탈무드에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머니가 딸을 시집 보내면서 당부한 이야기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딸아. 네가 만일 남편을 왕처럼 존경하면 그는 너를 여왕처럼 떠받들 것이니라. 그러나 네가 하녀처럼 행동하면 그는 너를 하녀처럼 취급할 것이니라. 만일 네가 콧대를 세워 남편에게 봉사하기를 싫어한다면, 그는 완력을 써서 너를 하녀로 만들어 버릴 것이니라. 네 남편이 그의 친구를 방문할 때면, 그로 하여금 목욕을 하고 옷을 단정히 입고 나가게 하라. 그리고 남편의 친구가 집에 놀러 오거든 성의를 다해서 극진히 대접 하거라. 그렇게 하면 남편은 너를 소중히 생각해 줄 것이니라. 항상 가정에 마음을 쓰고 남편의 소지품을 소중히 다루어라. 그러면 그는 네 머리 위에 왕관을 씌워 줄 것이니라. 샬롬! 2011년 5월 29일 주일아침 백호 ‘Home, Sweet Home’ - Roger Wagner Chora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