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裸木)의 힘으로 -노년을 보람 있게-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Lord Tennyson, 1809-1892)의 “참나무”(The Oak)라는 시가 있다. 참나무 네 인생을 살라, 젊은이 늙은이여, 저 참나무 같이, 봄엔 찬란히 산 금으로(Living gold). 여름엔 풍성하게 그 다음엔, 그리고 그 다음엔 가을답게 변하여, 은근한 빛을 가진 금으로 다시. 모든 그의 잎은 끝내 떨어졌다, 보라, 그는 우뚝 섰다, 줄기와 가지뿐, 발가벗은 힘. The Oak Live thy Life, Young and old, Like yon oak, Bright in spring, Living gold; Summer-rich Then; and then Autumn-changed Soberer-hued Gold again. All his leaves Fall’n at length, Look, he stands, Trunk and bough Naked strength. ‘참나무’(Oak)는 진한 녹색으로 수령은 수백 년에 이르며 심은 지 70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 열매를 맺으며, 보통 200년 이상 나무를 베지 않기 때문에 울창한 고목이 많아서 나무의 왕 또는 숲의 군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참나무는 영국의 대표적인 나무이다. 글로스터셔의 뉴랜드 오크는 높이가 100척이고 둘레는 46척이나 되고, 어떤 오크는 가지를 뻗으면 180척이고 1,000명 이상의 기병을 노숙시킬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처칠은 “영국산 오크는 살아서는 숲속의 왕으로 군림하고 죽어서는 바다를 지배한다”고 이 나무를 격찬했다. 아마도 오크 재목으로 만든 배가 해상을 제어한다는 뜻일 것이다. 테니슨이 80세에 쓴 이 시는 그리스 경구시처럼 잘 다듬어진 훌륭한 시로써 인생의 일생을 이 나무에다 비유하고 있다. 봄에 돋아나는 참나무의 새순은 금빛이기 때문에 인생의 봄에 비유되고, 여름에는 참나무의 가지가 크게 뻗고 잎이 무성하게 되기 때문에 인생의 중년에 비유되고, 가을의 참나무의 누런 은은한 색깔은 인생의 장년에 비유되며, 겨울에는  다 떨어져 줄기와 가지뿐이지만 우뚝 서있는 참나무의 모습이 인생의 말년에 비유되고 있다. 인생이 젊었을 때는 봄과 같으므로 참나무의 산 황금처럼 찬란하고 신선하며, 여름에는 참나무의 잎이 무성한 것처럼 인생의 중년에는 풍성함과 무성함이 있어야 하고, 가을에는 참나무의 잎이 은은한 빛으로 변하는 것처럼 인생의 장년기에는 은근한 빛을 띠우며 살아야 하며, 겨울에는 잎은 다 떨어져 줄기와 가지만 남지만 기품을 잃지 않고 굳건히 서서 적나라한 힘을 드러내듯이 인생도 그렇게 나력(裸力)을 가지고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말년은 원초적인 인간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모두 벗어던져야 하는 계절이지만, 모든 것이 다 벗겨졌다고 해서 초라하고 맥 빠진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노쇠해지기 마련이지만, 영혼의 숨결마저 쇠잔해져서는 안 되며, 노년이 되어 곤비하고 핍절하여도 독수리 같은 기백만은 잃지 말아야 하며,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매사에 당당해야 하고, 모든 것을 벗어던졌지만 우아한 모습과 청초한 자태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대개 화려하고 빛나며 아름답다. 중년 때도 대개는 풍성할 수가 있다. 친구도 많고 웬만큼 재산도 생겨서 흥청거리며 살 수가 있다. 그러나 가을을 맞는 준비가 없이 살다 보면 인생의 가을, 장년기에는 풍성한 결실을 거둬드릴 수 없고, 부를 노래도 또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가을의 노래는 봄의 노래처럼 감미로워서도 안 되고, 여름의 노래처럼 뜨거워서도 안 될 것이다. 가을의 노래는 은은하고 기품이 있어야 한다. 봄의 노래가 감각과 육체의 노래라면, 가을의 노래는 심령과 영혼의 노래이어야 한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들은 낙엽이 되어 떨어져 바람에 뒹굴게 된다. 낙엽은 무더웠던 여름의 사연을 전하는 동시에 겨울을 알리는 증표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은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서로의 사연을 주고받는다. 겨울이 되면 무성하던 나뭇잎들은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드러난다. 특히 가지와 줄기뿐, 잎은 하나도 없는 참나무는 참담하다 할 정도로 앙상하고 싸늘하기까지 하다.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겨울에는 나뭇잎들이 다 지는 것처럼 자식들도 둥지에서 날아가고, 사업의 일선에서 물러나며, 돈벌이도 못하고 친구도 하나 둘 사라져가지만, 그렇다고 초췌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은 매우 적나라하고, 결국 다 벗고 흙으로 돌아가지만, 인생은 그 순간까지 굳게 서 있는 힘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말 년일수록 더욱 호젓하면서도 높은 기상을 드러내는 인물들이 있다. 그런 아름다움과 보람은 금과 은을 주고도 살 수가 없다. 이것이 참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인생 교훈이다. 이 시 중에서 'sober’라는 단어와 ‘naked strength’라는 어구가 풍기는 의미와 정신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 인생의 장년기와 말년기를 그렇게 흉물스럽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1. 깨어남과 깨달음의 정신 이 시의 제2연에 'sober'라는 말이 나온다. 사전을 보면 ‘sober’는 ‘술에 취했다가 깨어난’'헛된 환상 혹은 유혹에 취해 있다가 깨어난’ 바른 정신의 상태를 말한다. 그 외에도 “침착한, 진지한, 냉정한, 온건한, 균형 있는, 분별력 있는”등 여러 의미로 번역될 수 있다. 청춘은 그저 찬란하고 아름답지만, 중년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인생의 장밋빛 환상과 어린 아이들의 응석 같은 유치한 착각과 환상적 취함에서 깨어나야만 침착하고, 온건하며, 균형감각도 갖게 되고, 분별력도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정신 상태들은 인생을 성숙시키고 맑고 깨끗한 생활의 지혜를 갖도록 해주는 보람 있는 삶의 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누구나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이 말한 ‘우상’이라고 일컫는 인생의 어느 측면에 대해서 ‘무지’와 ‘편견’을 갖고 있을 수 있다. 우리 인생은 바로 치명적으로 약한 이런 무지와 편견(우상)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위험스러운 시행착오와 우행(愚行)을 저지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있다. 그러나 그런 취생몽사 (醉生夢死)와 같은 미망(迷妄) 속에서 깨어나기만 하면 인생의 참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 인생의 장년기는 청년기처럼 뜨겁지도 못하고 중년기처럼 풍성하지도 못하지만, 은은하고 진지한 균형과 분별력으로 대변되는 지혜로움이 빛나는 시기로 만들 수도 있다. 논어에“지지자 불여호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호지자 불여낙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 라는 말이 있다.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공자는 깨달음의 과정을 지지자, 호지자, 낙지자의 3단계로 구분하였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는 것도 힘이 되지만, 좋아하고 누리는 것이 더 중요하고 낫다는 것이다. 배우고 알고 취직하고 돈버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 일을 즐거워하며 누리며 기본적인 원칙을 따라서 사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것이다. 그것이 지식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일확천금주의, 인기주의 등의 환상과 감주(甘酒)의 취기에서 깨어나 좀 더 맑고 청정한 삶의 지혜를 균형 있게 분별하는 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살이의 보람이 될 것이다. 2. 나목(裸木)의 힘(Naked strength) 겨울나무는 봄처럼 찬란하고 신선한 희망을 얘기하지도 않고, 여름처럼 성숙의 풍요로움을 말하지도 않으며, 가을처럼 황금빛 결실을 얘기하지도 않는다. 봄과 여름의 무성한 삶의 자취를 거두고 겨울에는 겉옷마저 벗고 온몸을 드러낸 채, 가지마다 스치는 차가운 바람 속에 스산한 모습으로 서 있다. 하지만 겨울나무는 죽은 게 아니다. 단지 숨을 고르며 인내로 기다리고 있을 뿐, 생명의 힘은 더욱더 세게 고동친다. 다시 한 번 천국에서 부활하게 될 영원한 봄을 기다리면서 발가벗은 힘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사는 게 발가벗고 찬바람 맞으며 서있는 나무같이 춥고, 꽤나 힘들고 삭막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한 형상이요 아이콘이다. 그러므로 믿음만 갖고 살면 절대 죽지 않고, 저기 서있는 나목처럼 다시 한 번 일어설 부활의 그날을 기다리며 내공의 힘을 쌓게 되는 것이다. 나뭇잎을 다 떨어뜨린 겨울나무는 자신의 몸을 가릴 것이 없다. 한 때 무성했던 나뭇잎과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었던 새들, 나무그늘 밑에 와서 쉬던 사람들조차 모두 떠나고 없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벌거벗은 몸, 줄기(둥치)와 가지만으로 겨울을 나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겨울에 가까워지면, 지위나 배경의 도움을 다 내려놓고 인간 실존에게 주어진 본래적인 힘과 의지, 곧 ‘발가벗은 힘’으로 우뚝 서야 한다. '발가벗은 힘’이란 일정 지위나 상황 때문에 만들어진 힘이 아니라, 본래적으로 내재되어 있어서 일정기간이 흐른 후에도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영력(靈力)과 근원적인 생명력을 의미한다. 그 근원적인 생명력으로써 나를 세우고, 경쟁시대를 헤쳐 나가며, 나아가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불어넣어 주신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과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도모하려는 신앙을 바탕으로 한 종교심 같은 것을 가지고 나목과 같은 삶의 멋과 핵심을 아 우를 수가 있을 것이다. <오늘의 말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사40:31) 출처= 연세대 명예교수 조신권 박사 2001년 11월 27일 11시 연세대학교 종합관 01호실 영어영문학과 고별강연 " 나목(裸木)의 힘으로"에서 발췌 샬롬! 2011/3/27 주일아침 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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