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3.1정신 - 잊지 말아야 할 -
지난 주일(2월27일)은 3.1 운동 92주년 기념 주일이었다. 본국은 물론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 교회들과 한인회가 이날을 기념하여 선조들의 위대한 애국정신을 기리며, 민족의 독립정신과 긍지를 후손들에게 길이 전해주는 날이었다. 1910년 8월 10일, 조국이 일본에 합병된 후 갖은 고난과 멸시와 설음을 겪을 때, 33인(기독교 대표 16명, 천도교 대표 15명, 불교 대표 2명) 의 애국지사들이 1919년 3월 1일 탑골 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손에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가두시위를 벌렸다. 일제의 기록에는 이 운동이 2개월 동안 전국으로 확산되어 211개처에서 1542회의 집회가 열렸고, 2백 2만여명이 이 운동에 참가했으며, 일제의 대대적인 학살과 만행으로 7만 500여명의 사망자와 1만 6천여명의 부상자가 생겼고, 4만 7천여명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9천 400명이 투옥되어 고초를 겪었던 것이다. 참으로 이 3.1운동 한국의 근대사에서 미국의 독립전쟁에 버금가는 민족의 위대한 정신적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은 이 위대한 우리 선조들의 애국정신과 희생이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날의 3.1 정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한국의 초등학교 학생들과 중고등학생들에게 3.1운동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 교육 부재에서 온 결과이다. 정말 잘못된 교육정책이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 꼽히는 유대인들은 지난 2000년동안 나라 없이 해외에서 유랑의 생활을 하면서도 그들의 언어와 전통 문화와 신앙을 지켜왔는데. 그 비결은 다름 아닌 그들의 고난의 역사를 성서에 기록하여 후세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주후 100년 경, 이스라엘이 로마제국에 망한 후, 민족의 지도자들이 얌니아에 모여서 그들의 삶의 유산인 고난의 역사를 집대성한 39권의 성경 (BIBLE)을 정경화하여 후손에게 물려준 것이다. 이들은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았지만 가는 곳 마다 선조의 고난의 역사가 담긴 성경책을 가지고 가서, 거기에 의거하여 삶의 기초를 닦았기 때문에 오늘의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기록 속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들이 지난날의 죄악을 숨기지 않고, 나라가 망하게 된 죄악상을 파 해치고 그것을 자손에게 상기시키고 가르친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선민이라도 죄를 범하면 망하고, 죄를 회개하면 다시 살길이 열린다는 것이 그들의 신앙이요 그들의 삶의 철학이다. 이제 우리도 삼일절을 맞이하여 고난의 역사를 상기해야 한다. 왜 우리가 일본 사람에게 당했나? 그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그 책임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를 너무 몰랐고, 일본을 너무 몰랐다. 일본의 침략 이전에 우리가 너무 무지했고 너무 무능했다. 외침 이전에 국론이 분열되어 당파 싸움에 세월을 보내고, 당권을 위해서 권모술수로 의인을 죽이고 충신을 쫓아내는 일을 거듭하는 중에 일본의 외침을 당하고 말았다. 내란이 외침의 동기가 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국회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이대로 간다면 앞날이 참으로 암담하다. 이제 우리는 유대인들과 같이 고난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2차 세계대전후 1953년에 건립한 예루살렘의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 'yad vashem'('이름을 기억하라'는 뜻) 앞에 "망각은 포로상태를 이어지게 한다.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라는 경구가 있다. 고난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만일 망각하면 다시 포로가 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옛날 바벨론 포로를 상기하면서 근세에 당한 고난의 역사를 결코 잊지 말자는 것이다. 그후 50년, 야드 바셀 개관 50주년 기념 표어에도 그와 같은 경구가 있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다" 198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야드 바셈의 대변인 엘리 위젤은 야드 바셈 (학살 기념회관)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죽은 친구들을 기억할 의무가 있다. 그들의 희생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깨닫는다." '야드 바셈(yad vashem)'이란 히브리 말로 '이름을 기억하다'의 뜻인데. 기념관에 들어서면 학살 당한 희생자의 이름이 차례로 흘러나온다. 지금 초등학생이나 중고등 학생 중에 유관순이란 이름을 알고 있는 학생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격으로 엄연히 우리 땅인 독도를 일본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초등학교 교과서에 올리고 가르친다고 하니 그 속셈이 무엇이겠는가? 장차 기회만 있으면 다시 침략하려고 하는 포석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일본의 만행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워싱턴에도 유대인 대학살 기념 박물관이 있는데, 2차 전쟁 때 나치가 유태인 600만명을 학살하던 장면들을 생생하게 전시해놓고 있다. 독일의 지도자들이 이에 불만을 품고 이미 지난 사실을 너무 이렇게 노골적으로 전시하는 것은 양국간의 국교에도 큰 지장이 있지 않는가하면서 항의를 했더니, 유대인 지도자들이 대답하기를,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당신들을 저주하고 증오해서가 아니라, 다시는 우리의 후손과 인류에게 이런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한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미국의 유대인들은 지난날의 고난의 역사를 뼈저리게 느끼고 철저하게 고난의 역사를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다시는 그러한 고난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 자녀들에게 열심히 학문을 가르쳐서 대학교수, 변호사, 실업인, 정치가들을 많이 배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삼일절을 맞이할 때마다 원수를 사랑하고 용소하되 고난의 역사를 망각하면 다시 고난을 되풀이한다는 교훈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떤 심리학자가 3 가지 부류의 사람을 말했다. (1) 어리석은 사람: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절대로 잊지 않고 복수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해가 되는 사람이다 (2) 순진한 사람: 지난 날의 원수를 쉬 잊어버리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다시 원수에게 당하기 쉬운 사람이다. (3) 지혜있는 사람: 용서는 하되 다시는 당하지 않으려고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이다. 유대민족은 지혜 있는 백성이다. 그들은 고난의 역사를 성경에 기록하여 축일과 기념일을 2천여년 동안 지켜오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떤 부류의 사람인가?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잘 준행하되, 고난의 역사를 망각하고 다시 원수에게 당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망각은 포로상태를 이어지게 한다.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 32:7) 샬롬! 2011/03/06 주일아침 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