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만 볼 수 있다면 Three Days To See
- 헬렌 켈러 - (아이젠 하우어와 면담하는 헬렌 켈러) "만일 당신이 삼일동안만 볼 수 있다면 무엇을 보겠는가?" 어려서 부터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헬렌 켈러는 이 놀라운 에세이를 통해서 자신의 물음에 답하고 있습니다. 만일 각 사람이 어떤 젊은 시절에 며칠만이라도 시각 장애나 청각 장애를 경험한다면,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어두움은 그로 하여금 보는 것에 대해서 보다 고맙게 여기게 할 것이고, 고요는 소리의 즐거움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나는 가끔 앞을 보는 친구들에게 그들이 보는 것에 대해서 시험해 봅니다. 최근 나는 숲속을 긴 시간 산책하고 막 돌아온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거기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특별히 본 것은 없었어."라고 답했습니다. 아니 한 시간이나 숲속을 산책하면서, 가치있는 것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니,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하고 스스로 물어봤습니다. 앞을 못보는 나는 촉감으로 관심있는 여러 가지 사실을 찾아내고, 잎사귀의 섬세한 균형미를 감지합니다. 나는 손을 살며시 내 밀어 은빛 자각나무의 부드러운 껍질을 만저 보기도 하고, 거칠고 더부룩한 소나무 껍질도 만저 봅니다. 봄이면 동면에서 깨어나는 자연의 첫 신호인 새순을 바라고 나무 가지를 살짝 만저 봅니다. 가끔 운이 아주 좋으면 작은 나무에 손을 살며시 얹을 때에 한껏 노래하는 새의 행복한 전율을 느끼기도 하며, 때로는 이 모든 것들이 보고 싶어서 가슴을 태우는 때도 있습니다. 촉감으로도 그렇게 많은 기쁨을 얻을 수 있다면, 눈으로 직접 본다면 얼마나 더 많은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만일 나에게 3일만이라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내가 제일 많이 보고 싶은 게 무엇일까 상상해 봤습니다. 첫날에는, 친절과 우정으로 나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준 사람들의 얼굴을 볼 것입니다. 무엇보다 은사이신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이제껏 손끝으로 만져서만 알던 그녀의 얼굴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 모습을 내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해 둘 것입니다. 나는 눈이 "영혼의 창"이라는 말을 통해서 친구의 마음을 알아보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손끝으로 얼굴의 윤곽을 "볼" 수 있고, 웃음과 슬픔과 다른 많은 뚜렷한 감정들을 탐지하고, 그들의 얼굴을 만저보고 친구들을 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나에게 읽어주었던 책들과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깊은 감동을 주었던 책들을 볼 것입니다. 오후에는 숲속을 장시간 산책하는 동안 나의 눈은 자연의 아름다운 세계를 열광적으로 바라 볼 것입니다. 그 후에 황혼의 불타는 노을을 바라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기도하고, 아마 그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둘째 날에, 나는 인간 발전의 발자취(Pageant)를 보려고 박물관으로 갔을 것입니다. 거기서 예술 작품을 통해서 인간의 영혼 속을 탐사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촉각으로 알던 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저녁에는 극장이나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다시 밝아오는 새날에 감탄하고, 새로운 환희와 새로운 미의 계시를 찾기에 갈급했을 것입니다. 오늘 삼일되는 마지막 날은 평범한 일상 세계에서, 생업을 위하여 분주하게 왕래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보내고, 밤이 깊어지면 영구한 밤이 다시 나에게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흑암이 다시 나에게 찾아왔을 때에 비로소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지 못한 채 남겨 두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시력을 상실할 운명에 직면한다면, 당신은 예전같지 않게 당신의 눈을 사용할 것입니다. 보는 모든 것이 사랑스러울 것이며,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들을 주의깊게 보고 포옹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진실하게 사물을 깨닫고, 새로운 미의 세계가 그대 앞에 전개될 것입니다. 못 보는 내가 보는 당신에게 한 마디 조언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의 눈을 마치 내일이면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사용하시고, 다른 감각에도 이렇게 적용하십시오. 성악도, 새 소리도,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화음도 내일이면 다시 들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태도로 듣으십시오. 모든 사물을 만질 때 내일이면 나의 촉감이 살아질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만지십시오. 꽃들의 향기을 맡고, 음식의 맛을 음미할 때, 내일이면 결코 다시는 냄새를 맡을 수 없고, 맛을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하시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닌 모든 감각들을 최대한 선용하십시오. 자연계가 제공하는 몇 가지 접촉의 수단을 통하여 세상이 당신에게 계시하는 지극히 작은 한 쪽의 기쁨과 아름다움에도 기뻐하십시오. 그러나 이 모든 감각들 중에서 제일은 시각이라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숲을 무의미하게 산책하고 돌아온 친구에게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고 질문한 것이 계기가 되어 쓴 헬렌 켈러의 이 글은 '애틀랜틱 먼스리' 1933년 1월 호에 발표되어 당시 경제 대공황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많은 미국인들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이 글을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꼽았다고 합니다. 헬렌이 그토록 보고자 했던 일들을, 우리는 날마다 일상생활 속에서 특별한 대가도 없이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지 인정하는 사람들은 극히 적은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십시다. <오늘의 말씀>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샬롬! 2010/12/5 주일아침 백호 출쳐 "Three Days To See"
Beethoven Symphony 6 Part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