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 상식적인 수준에서 옳은 사람 -
“좋은 방송이란 상식적인 수준에서 옳은 방송이다” 이 말은 지난 월요일 (9월 6일 오후 )부터 시작된 KBS 일일연속극 “웃어라 동해야” 제1회분 벽두에, 어느 방송국 아나운서국 국장으로 부임하는 김 준(극중 인물)이 신임 취임인사에서 부하 직원들에게 던지는 첫 마디 대사이다. 이어서 그는 난 앞으로 여러분이 어떤 프로그램에서 마이크를 잡 게 되던 힘없는 사람, 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을 생각하면서 옳은 방송을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을 할 것입니다.” 여기 상식이란 무엇인가? 영어에서는 Common Sense, Practical Sense(Wisdom)라 했다. 보통 사람이 일반적으로 공감하는 느낌이나 깨달음이나, 실생활의 지혜를 말한다. 아마도 이 말속에는 작가가 의도하는 드라마의 대의(大義)가 숨어 있 지 않나 생각을 해 본다. 참으로 가슴 벅찬 드라마의 대의가 아닐 수 없 다. 작가가 앞으로 어떻게 드라마를 전개해 나갈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오늘 이 사회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바라는 메시지라는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 “힘없는 사람, 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을 위하여!” 이것이 바로 복음의 주제이며 메시야 왕국의 꿈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다.(삼상2:1-10;사61:1,2; 눅 1:46-55, 눅 4:16-19). 그렇다. 우리 주변에는 내가 도울 수 있는 약자들이 얼마든지 있다. 내 수준에서 나만 못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무엇이라도 베플수 있어야 한다. 내가 반듯이 백(100)이라는 넉넉한 위치에 있어야 베풀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비록 십(10)을 가졌더라도 1도 못 가진 이웃에게 다만 1이라도 나눠 주려는 마음, 이것이 복음을 전파하는 우리 기독인의 마음속에 반듯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시 드라마 스토리로 넘어간다.  남편이 국장으로 승진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부인이 축하하는 저녁상을 차렸다. 검소한 삶을 주장하는 김 준 국장이 밥상을 둘러보면서 한마디 한다.  “식구는 단출한데 너무 과하네!” 그 한마디가 시청자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그리고 장명이 바뀌면서 아들에게 한마디 던진다. “축하는 고맙지만. 가장의 직책이 올라갈수록, 식솔들은 고단해 지는 법이야, 가볍게 행동하지 마라!”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아마도 작가는 방송국을 빙자해서 국회, 법원, 회사, 기업체, 교육계, 그리고 종교단체 등을 향해서, 그 자리는 봉사하는 수단으로서 존재하는 자리지, 결코 그것을 이용해서 인권을 유린하거나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줘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하려고 한 것 같다. 며칠 전 친구로부터 이런 사연의 편지가 왔다. 내용은 손자와의 대화이다. 친구가 사는 아파트 13층엔 손자가 다니는 모고등학교 교장이 살고. 12층에는 친구가 사는 관계로 거의 매일아침 등교시간에 엘리베이터에서 교장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데, 손자는 교장님을 만나는 날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날 아침도 엘리베이터에서 교장을 만났는데, 손자가 차를 타고 가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아침에 교장선생님을 만나면 기분이 나빠요. 아침부터서 교장님 얼굴을 보게 되면 힘들어요. 그러니깐 내일 부터는 5분 일찍 우리가 먼저 나가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손자가 하는 말이, “학생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 면 웃는 얼굴로 ‘공부 잘하지?’ 라던가  ‘반갑다’라던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반가워하는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무뚝뚝하게 인사나 받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얼굴도 보지 않고, 문이 열리면 금방 제일먼저 빠져 나가시잖아요. 학생 입장에선 정말 부담이 되고, 잠시 남아 힘들어요.” 그래서 그 후부터 친구는 등교시간을 5분 앞당겼다고 한다 친구는 이어서 하는 말이, “손자의 말이 옮다”고 하면서, 당신의 기분도 마 찬가지라고 한다. 분명코 그는 당신이 누구인줄도 알고, 자기 학교의 이사장과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인데도 위 아래층에서 살면서 아침에 당신을 보면서도 인사 한마디 없다는 것이다. 친구는 섭섭한 마음에서 이렇게 말한다. "교장이면 그런가요?” 이것이 어디 그 교장뿐이겠는가? 우리 모두 ‘장’자 달린 사람은 각기 반성해 봐야할 문제다. 옛날 우리 자랄 때만 해도,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는데. 지금은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스승이 없어서 그런지, 제자가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분명코 앞선 자의 책임이 더 큰 것 같다. 그래도 이스라엘이 극도로 타락햇을 때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않은 7000(칠천)명이 있었듯이(왕상19:18), 아직 우리 나라에는 양심적인 나라 일꾼들이 많이 살아있고, 정의를 호소하는 작가들, 방송인들, 그리고 교육자, 종교인들이 아직 이 땅에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우리의 큰 희망이다. 이제 우리도 유별나게 잘난 사람도 말고, 그렇다고 지지라 못나게 굴지도 말고, 일상생활에서 상식적인 수준에서 최선을 다하며, 우리 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려는 사람들 중의 일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짐해 본다. 힘없는 사람 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에게 군림하는 자는 극히 어리석은 사람이요, 그들을 하늘같이 대접하는 사람은 하늘같은 사람이요, 존경받는 지도자요. 진정한 스승이라 할 것이다. <오늘의 말씀> “그럼으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데도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샬롬! 2010년 10월10일 주일아침 백호
Gregorio Allegri(1582-1652)- Miserere Mei,De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