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에 대한 성서적 이해 - 바로 사용해야 할 예배 용어 -
한국교회는 아멘의 신앙을 가진, 세계적으로도 뛰어난 교회라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도 예배시에 할렐루야, 아멘을 부르는 교회들도 있지만, 한국교회만큼은 아니고, 무엇보다 대중기도시에 아멘하는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신식교회라 해도 대중기도시에 아멘 아멘 하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리고, 기도 끝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하면 온 회중이 큰 소리로 "아멘"한다. 그런데, 미국 교회는 대중기도 끝에도 아멘하는 사람이 없다. 기도자 혼자만 "아멘"하고 만다. 그것은 기독교 문화의 차이겠지만, 대중기도 끝에 모든 회중이 한 음성으로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전통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한편 아멘에 대한 넌센스도 적지는 않다. 어떤 설교자는 설교시간에 청중의 아멘을 요청하기도 하고. 어떤 부흥사는 한시간 설교에 수십번 청중의 "아멘"을 유도하기도 한다. "믿습니까?” "아멘입니까?" 하면, 대접상 그저 아멘하는 사람도 있고, 아멘 소리가 적으면, 강사는 다시 묻는다.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그러면 영락없이 아멘 소리가 커진다. 이렇게 하는 것은 설교시간에 딴 생각을 하거나, 졸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효과가 크다. 뿐만 아니라 아멘을 바로 이해하고, 바로 사용하면 아멘 소리가 클수록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아멘은 하나님의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흥사가 아멘을 난발하거나 장난끼가 썩인 음성으로 아멘을 유도한다면 그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요4:23, 24) 앞에 불경죄를 범하는 처사이기도 하다. <아멘이 무엇인가?> '아멘'은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소원입니다.'라는 뜻을 가지며, '의지하다'라는 히브리어 동사 '아만'(aman)에서 파생된 부사로 구약시대부터 예배용으로 사용되어 왔다.(신27:15, 고전 14:16) <아멘은 언제 사용하는가?> 1. 말의 어두에 사용되어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해 동의와 약속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왕상1:36). 2. 아멘 자체만으로 사용되어 진실에 대해 맹세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민 5:22). 3. 기도나 찬양의 마지막에 사용되어 그 내용과 같이 이루어지기를 원할 때 사용되었다(대상16:36). 4. 편지(메세지)를 끝맺을 때에 축복의 말과 함께 사용되었다(갈6:18). 5. 예수께서 자신의 말을 확언하고 강조할 때 사용하셨다(마5:18). 6.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어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의 구원 약속의 성취임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계3:14). <아멘을 제일 먼저 사용한 사람은 누구인가? > 아멘의 원조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다. 이성호 목사의 "성구대사전" (서울:혜문사), 546쪽)에 보면, '믿음' 혹은 '믿으니'는 히브리 말 '아만(aman)'의 히필(hiphil)동사이다. 히필동사를 사역능동태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내 스스로 믿는 게 아니고, 믿음의 대상이 나로 하여금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함으로 믿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아멘이다. 아멘은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과 은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아멘은 내가 스스로 믿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믿게 하신 것이다.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언약과 이를 성취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使役)에 대한 인간의 응답(response)이 곧 아멘이다. 바울의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사상(롬1:17)도 바로 이 아브라함의 '아멘'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절) 여기 본문에 나오는 '믿으니'(heemin)는 히브리어 '아만 aman' 동사의 사역능동태(Hiphil)인데. 아멘이라는 믿음은 아브라함 스스로가 믿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믿게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본문 전후 문맥을 보면 하나님은 무자한 노인 아브라함에게 후사를 약속하셨다. '네 자손이 저 밤 하늘의 별같이 되리라' 하셨다. 이 세상에서 이 이상의 더 기쁜 소식은 없다. 이것이 복음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고, 없는 데서 있게 하신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믿게 하셨다. 따라서 이 믿음이 곧 기독인의 믿음이 되어야 하고, 이것이 아멘의 기본이다. 출애급기에도 '아멘'에 대한 실례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건넌 후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다'는 기록이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에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급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급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출14:30, 31). 즉 하나님께서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보여주셨고, 이스라엘이 그것을 친히 보았음으로 여호와를 믿고 모세를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때의 '믿었더라'는 말도 아브라함이 믿었다는 말과 같은 어근(aman) 을 가지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믿을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는 말이다. 오늘날 부흥사가 강단에서 아멘을 강요할 일이 아니고. 먼저 청중이 믿을만한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에 스스로 마음에서 아멘이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아멘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요, 말씀의 응답이다. 결코 설교자를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말이 아니다. 따라서 아멘과 함께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할렐루야'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Praise The Lord)는 것이다. 아멘은 하나님에 대한 응답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결단이다. 결코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유다 마카비어스'의 마지막 합창에 '할렐루야 아멘' 이라는 곡이 있다.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 주로 세속적 음악을 작곡한 헨델이 '메시야'는 물론 '할렐루야 아멘'을 작곡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분명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이 위대한 성곡의 결론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의 모든 결론이 하나님께 영광으로 돌아갈 때에 그 모든 영광은 다시 영원한 축복으로 인간에게 되돌아 온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할렐루야 아멘으로 화답해야 할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 헨델> 할렐루야 아멘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아멘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아멘 아멘 할렐루야 아멘 오 유다 기뻐, 기뻐하라 기뻐하여라 오 유다여 저 천사들과 함게 노래하여라 저 천사들과 함께 노래하여라 할렐루야 아멘 아멘 할렐루야 아멘 기쁜 노래로 화답하라 할렐루야 아멘 아멘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할렐루야 아멘 <오늘이 말씀>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4-6) 샬롬! 2010년 9월12일, 주일아침 백호

George Frideric Handel, "Hallelujah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