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서 시작되는 선교" - 반성해야 할 선교정책 -
윌리엄 바클레이는 일본의 가가오 도요히코를 “현대의 성자”라고 불렀다. 그가 그렇게 추앙을 받고 존경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독일의 어느 선교사의 전도로 깊은 감화를 받는 순간,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오 나의 하나님! 나를 그리스도와 같이 만들어 주소서!” 그후 그는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하여 빈민굴로 들어갔다. Cecil Northcott의 "위대한 생애의 결단"이라는 책에서 가가와가 행한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한 대목이 있다. “가가와는 빈민굴에서 6자 되는 단칸 거적 방을 얻어 들어갔다. 첫날 저녁 그는 전염성 피부병을 가진 거지로부터 재워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것은 가가와에 대한 신앙의 시금석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거지의 부탁을 거절함으로써 다시는 되돌이킬 수 없는 본래의 위치로 돌아갔을까? 아니다. 그는 거지를 환영하였다. 거지는 또 가가와의 샤쓰를 요구했다. 그는 그것을 주었다. 다음날 거지는 가가와의 외투와 바지도 달라고 구걸했다. 그는 이것까지 다 주었다. 가가와는 이제 다 떨어진 기모노 하나만 걸치게 되었다. 빈민굴 주민들은 그것을 보고 가가와를 비웃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주민들은 가가와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 서서 종일 전도를 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는 폐결핵으로 종종 설교 도중에 쓰러지기도 했다. 빈민굴에 사는 난폭한 불량배까지도 그를 존경했다. 그를 자기들의 오두막으로 모셨다. 가가와는 자신이 기록하기를, 하나님은 가장 낮은 사람들 가운데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수들이 모인 감옥의 먼지더미 위에 앉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범죄 소년들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걸인들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병자들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은 실업자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성전을 찾기 전에 감옥을 먼저 찾으십시오. 교회로 가기 전에 병원엘 먼저 가십시오. 성서를 읽기 전에 걸인들을 구제 하십시오.“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어떤가?> 지난 9월 2일자, 한국일보  Washington DC 인터넷 신문 '기윤실 호루라기'에 우리의 반성을 촉구하는 귀한 글이 실렸다. 제목은 "나에게서 시작되는 선교"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톨릭 인구가 많은 남미의 어느 나라에 교황청 대사관 관저가 너무 호화롭게 지어졌다. 이에 불만을 품은 가난한 이웃 주민들이 밤에 몰래 가서 관저 담벼락에 낙서를 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관저측에서는 몇 번 이 낙서를 지웠지만 낙서가 계속되자 하는 수 없이 지역 경찰에게 관저 경비를 부탁했다. 경찰이 낙서 금지를 위해 그 지역의 순찰을 강화했다. 이 사실을 본 지역 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교황청 대사관저에 복음이 적히는 것을 막기 위하여 경찰을 동원했다.” (사실 관계는 알 수 없지만 오래 전 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스쿠르테이프(Screwtape)라는 가상의 악마를 통해 C.S. 루이스는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는 동정을 품으면서 가까이 있는 이웃들을 외면하는 현대 기독교인의 위선을 지적하면서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악마가 가장 유혹하기 쉬운 상대라고 표현했다. 이 두 이야기는 한인 교회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 most precious rule)로 여기고 있는 ‘선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언제부턴가 한인교회들은 "우리 교회는 예산의 몇 퍼센트를 선교에 사용합니다” 라는 말을 슬로건으로 내거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헌금이 선교에 쓰여야만 만족하는 이들은 그 슬로건에 열광하며 퍼센티지가 높은 교회로 이동해가는 선교의 전사들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언론은 이 열기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선교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선교의 결과 역시 중요하지 않았다. 아프리카나 남미가 겪는 가난의 구조적 원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 채 물량 공세로 명목상 크리스천만 확보하면 선교는 성공한 것으로 보았다. 선교는 교회의 다른 모든 사명을 제쳐두고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자신들이 고용하고 있는 남미계 이민자들에 대한 복지에는 야박해도 멀리 남미를 위해 선교헌금만 듬뿍 내면 그는 좋은 기독교인이 된다.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는‘맥작’이라는 흉물스러운 단어를 사용하면서 멀리 있는 ‘맥작’은 우리의 형제자매가 된다. 이제는 한인교회들의 선교 양태를 냉정하게 돌아보아야 할 때다. 선교의 의미는 자신이 확신하는 바를 전파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음의 주체들이 제대로 믿지 못하고 있는데 무슨 선교인가? 그래서 최근에는 자신부터 선교하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들에게 기독교인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주는 것이 선교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현장화하는 것이 진정한 선교다. 선교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행하는 선교는 어린 아이에게 쥐어진 흉기처럼 두렵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바른 믿음, 바른 실천을 위해 투자하는 데도 인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처럼 자신에 대한 선교가 시작되면 선교의 대상이 지구 저편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있는 이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현장에서 구현하는 것이 진정한 선교이기 때문이다. (참고= 김기대, LA 평화의교회 담임). <오늘의 말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6-28)
멀리 가서 이방사람 구원하지 못하나 내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사람 많도다 천사같이 말못하고 바울같지 못하나 예수께서 구속함을 힘을 다해 전하세 (263장 2절)
샬롬! 2009년 9월 6일 주일아침 백호 백호의 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