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 동거동락 시대

(조선일보)

입력 : 2010.05.18 02:48 / 수정 : 2010.05.18 10:03

[癌, 동고동락 시대] [上] 오뚝이처럼 이긴 사람들
"체력 다졌다… '꼭 일어선다' 최면 걸었다… 암이 떠나갔다"
보람·기쁨주는 일에 몰입… 암 워낙 끈질기기 때문에 겸손한 자세로 대해야
혼자선 이겨내기 힘겨워 가족도 함께 도와줘야

암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다. 2002년 29만1820명이던 암환자 수는 2008년 55만 226명으로 6년 사이에 2배 가까이로 불어났지만, ‘암=사망’이란 등식은 깨졌다. 암 환자 절반 이상이 5년 넘게 살고 있다. 현대인에게 암은 한 번쯤 거쳐가는 질병이 됐다. 암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시대를 맞아 암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과정에서 싹트는 가족애, 암을 이긴 뒤 새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박찬홍(70) 공주대 체육교육과 명예교수는 지인들 사이에서 '5성(星) 장군'으로 통한다. 박 교수는 지난 1985년 대장암(상행결장암)을 시작으로 무려 다섯번이나 암과 혈투를 벌였다. 그리고 모두 승리했다. 암을 이겨낼 때마다 병문안 간 친구들은 박 교수에게 "이번에도 또 별을 달았네"라고 농담을 했고 이젠 그 '별'이 5개가 됐다. 박 교수는 "살면서 하고 싶은데 못해 본 일들이 너무 많아 세상을 떠날 수 없었다"며 "암을 다섯 번 극복하고 나니 의사가 내게 '100세까지는 살 수 있겠다'고 하더라"고 웃었다.

다섯 차례나 암과 싸워 이기며‘5성 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은 박찬홍(70) 교수가 활짝 웃고 있다. 박 교수는 암을 이기는 4가지 비결을 소개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박 교수는 1985년 암과 '1차전'을 치렀다. 박 교수는 공주대로 출근하던 길에 배를 쥐어뜯는 듯한 고통을 느껴 병원에 갔고,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박 교수는 150㎝쯤 되는 대장의 3분의 1(50㎝)을 잘라냈고 이후 1년 동안 방사선 치료와 항암주사 치료를 받았다. 박 교수는 "대학 입학당시 복싱을 하고 대학 재학때 미식축구팀 창단 멤버였을 만큼 건강한 체력이 뒷받침돼 암을 잘 극복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암과의 전쟁은 시작에 불과했다. 암은 불시에, 아무 데서나 박 교수 몸을 공격했다. 박 교수는 1996년과 2004년, 2009년에 연거푸 암과 맞섰다. 1996년에는 '2차전(위암)'과 '3차전(횡행결장암)'이 동시에 발생했지만 위장의 절반, 횡행결장을 다 잘라내는 수술과 방사선 치료, 항암주사 등 '죽을 것 같은' 치료를 받고 살아났다. 2004년에는 직장암이 박 교수를 괴롭혔지만, 역시 강한 정신력과 체력으로 이겨냈다. 박 교수는 "암을 4번이나 겪었는데 또 생기겠느냐는 생각에 고교 동문회보에 '4성 장군 제대기'라는 글을 썼는데 5년 만에 다시 암 진단을 받았다"며 "욕심부리지 않고 밝게 사는 게 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작년 4월에는 담도(간에서 생성된 담즙이 십이지장으로 흘러가는 통로)에 암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고 또 수술을 받았다. 박 교수는 4차례 암과의 전쟁으로 몸무게가 80㎏에서 50㎏ 초반으로 줄어 체력이 급격히 약해졌지만 '5차전'도 무난히 방어했다. 박 교수는 '수퍼맨'이 아니다.

그는 "암과 싸우면서 하루에도 수십 차례 삶과 죽음, 천당과 지옥을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며 "건강했던 때에 비해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 화장실에서 남몰래 운 적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박 교수는 암을 이겨낸 자신만의 노하우를 4가지 소개했다. 첫째는 '자기최면'이었다. 박 교수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나를 향해 주먹을 뻗으며 '너 여기서 쓰러질 거야? 아냐. 내가 여기서 죽을 수 없지. 일어서야지'라고 자문자답한다"고 말했다.

둘째는 보람과 기쁨을 주는 일을 찾는 것이다. 박 교수는 요즘 '할아버지 동요 전도사'로 일하며 행복을 누리고 있다. 박 교수는 "매주 노인종합복지관에서 가곡과 동요를 가르친다"며 "이런 것들이 내 삶을 지탱해주고, 지금 내가 죽어서는 안 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정기 검진 꼭 받으세요"… 대장암과 간 전이암을 이겨내고 건강을 회복한 회사원 백경재(60)씨가 17일 오후 서울 구로구 신도림의 한 아파트 단지 공원에서 지나가던 고교생과 팔씨름을 하고 있다. 그는 이 팔씨름에서 이겼다. 2006년 암진단을 받았을 때 ‘오진’을 의심했던 백씨는“건강을 과신하지 말고 정기 건강검진을 꼭 받으라”고 조언했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그는 암을 극복한 세 번째 비결로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을 꼽았다. 마지막으로는 부인의 내조였다. 박 교수는 "암은 가족이 함께 투병하는 자세로 곁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극복하기 힘들다"고 조언했다.

그는 "수차례 암을 겪으면서 암과 어깨동무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교수는 또 "별을 한개 더 단다고 해도 두렵지 않다"며 "암이 또 생기면 최선을 다해 이겨야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기적의 오뚝이'는 박 교수뿐만이 아니다.

고창순(78) 가천의대 명예총장은 청년과 중년, 장년에 걸쳐 3번이나 암을 이겨냈다. 25세 때(1957년) 대장암을 이겨낸 뒤 50세(1982년)와 65세(1997년) 등 3번이나 암을 극복했다. 고 총장은 일본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던 중인 1957년 대장의 절반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은 후 60㎏이던 몸무게가 43㎏까지 빠지는 등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굳은 의지로 일본 의사시험에 합격했다. 서울대병원 부원장직에서 물러나던 1982년에 십이지장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11시간에 걸쳐 십이지장·위·췌장·담낭 그리고 소장 일부를 들어내는 대수술을 받았고, 1997년에는 간암 수술을 받았다.

3차례에 걸친 암과의 끈질긴 싸움을 이겨낸 고 총장은 "암을 이기려면 기력과 담력, 체력 3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 총장은 "긍정적인 생각을 할 때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며 "내가 암을 다스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암이 마음대로 공격을 못한다"고 설명했다.

회사원 백경재(60)씨는 대장암과 간 전이암을 이겨낸 오뚝이다. 백씨는 "암은 워낙 끈질기기 때문에 겸손한 자세로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씨는 2006년 종합검진을 받을 때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매주 토요일마다 조기축구를 해 건강에 자신 있던 백씨는 "오진 아니냐"며 "내가 암이면 대한민국 사람은 전부 암이다"라며 펄펄 뛰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암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더 큰 병원에서 같은 검사를 받았지만, "대장암 말기다. 빨리 입원하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백씨는 "당시만 해도 암 걸리면 죽는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백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대장을 30㎝ 잘라냈고, 암세포가 전이된 간도 일부분 잘라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몸에 있는 털은 다 빠졌다.

백씨는 "혼자서 화장실 가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의사는 운동을 시켰다"며 "이를 악물고 운동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독하게 한 게 암을 이겨내는 데 체력적·정신적 바탕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오뚝이 백씨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과신하지 말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암은 늦게 발견될수록 낫기 힘들다"며 "정기 건강검진을 꼭 받을 것"을 강조했다.

하루에 담배 2갑을 피우고 소주 1~2병을 마시곤 했던 신동일(63)씨는 한 번에 2개의 암이 동시에 찾아오는 고통을 겪었다.

경북 경산시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신씨는 2001년 직장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추가로 받은 정밀검사에서 왼쪽 콩팥에도 암이 퍼져 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신씨는 "의사선생님이 '수술하면 나을 수 있다'고 말씀했는데 그 말을 믿고 따른 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며 "암 환자들은 '암은 별거 아니다. 분명히 낫는다'는 자신감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씨는 "암에 걸리기 전보다 더 상쾌하고 좋은 기분으로 아침을 맞는다"며 웃었다.

자료제공=윤영옥 yoyoun@msnl.com